장편 소설 ‘태양의 일곱광채’ 네이버에 연재
길거리 장애물로 인해 무릎 늘 멍투성이

 


부천 송내 2동에는 웹 소설가로 활동하고 있는 1급 시각장애인 김흥석(59)씨가 화제가 되고 있다.
김 씨는 현재 포털 네이버(http://novel.naver.com/challenge/list.nhn?novelId=506340&page=1)에 웹 소설 ‘태양의 일곱광채-천하의 대의’를 챌린지 코너에 연재하고 있다.
이 소설은 고전풍의 환타지 소설 ‘서유기’나 ‘반지의 제왕‘류의 장편으로 태양을 상징하는 왕자로 태어난 주인공 '선일봉‘이 난국에 빠진 우리나라의 현 정세처럼 어지럽고 혼탁한 인간사회 질서를 바로 잡아 주는 메시아로 나온다. 현재 1편 전반부가 끝난 상태로 후반부는 내년초부터 연재를 게재한다고 한다. 김 씨는 시각장애인의 어려움을 딛고 5000만 잠재 독자들에게 인터넷에 소설을 게재한다는 큰 자부심을 갖고 있다. 그는 재야 소설가로 불려지기를 바랐다. 지난 7일 김흥석씨는 활동보조인과 함께  본지 사무실을 방문했다. 시각장애인으로 문필 활동에 접념해 온 그간의 삶의 얘기를 들어보았다.

 

김 씨는 “문화강국이 세계를 주도 한다”고 말문을 열었다. 박근혜 정부가 문화융성을 위해 미르 재단 설립을 추진했지만 실패 한 원인은 “최순실 등 측근들이 문화를 돈벌이 수단으로 악용했기 때문”이라고 평했다.
영국은 셰익스피어 같은 대문호를 통해 문화융성으로 대국을 일구었고 최근에는 ‘해리포터’ 한권으로 4조원의 수익을 창출했다고 강조한 김 씨는 우리나라가 노벨문학상을 배출하지 못하는 이유는 “필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번역이 활발하지 못하고 문학주류 국가가 아니기  때문에 기회를 가질 수 없었기 때문이다”고 주장했다.
김 씨는 50대 전후인 10년 전에 시력을 잃고 삶의 방향 전환을 모색하다 2008년부터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해 네이버(naver)에 연재 중인 ‘태양의 일곱 광채’ 3편은 이때 완성 한 장편 소설이다.
앞으로 독자들의 반응을 보고 단행본으로 낼 예정이다. 지금은 아내가 외벌이로 생계를 이어 가고 있기 때문에 출판 비용에 마련을 못해 엄두를 못 내고 있지만  “장애인지원 단체나 독지가가 나타나 출판비용을 쾌척 해 주면 좋겠다” 고 솔직한 심경을 피력했다.
김 씨는 나름의 문필 활동의 3대 원칙을 갖고 있다. 첫째 ‘고전에서 길을 찾자’ 이다. 타계한 스티브 잡스,노벨 문학상을 받은 밥 딜런도 고전을 통해 식견을 넓혔다고 강조한 김 씨는 젊은이들이 “책속에 길이 있다”는 사실을 꼭 명심해 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그는 “컴퓨터에 매몰, 갇혀 있는 세상을 살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둘째 ‘사람이 중심이 되는 사회’이다. 김씨의 가훈도 ‘人中重’이다. 셋째 빛(태양)의 창조이다. 김 씨는 우리의 육신은 빛의 광합성이 있기 때문에  살아 갈수 있다고 했다. “듣고 기억하는 것보다, 보고 기억하는 것이 훨씬 쉽다. 짓는 ‘개’와 기어 다니는 ‘게’를 듣고 선 구별하기 어렵다. 빛의 고마움을 깨달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 씨는 여러 미공개 작품을 갖고 있다며, 몇 개의 작품을 설명했다. 그중  멜로 소설인 ‘참사랑’은 현대화 과정에서 복지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내용으로 주인공 심현섭은 사생아로 태어나 법관이 되어 성공의 길을 걷는다. 그는 돈을 많이 벌어 사회 복지에 투자 한다. 정부와 대기업의 지원을 받아 병원을 갖춘  대규모 생산이 가능한 농지를 보유한 복합 복지 단지를 조성, 음지의 사람들에게 희망을 준다. 김 씨는 이 소설에 나와 있는 복지시스템이 우리나라가 나갈 방향이라고 주장했다. 그 외 대화소설 ‘아리가 종유기’는 종자전쟁에서 살아남을 방법을 제시하고 있고 수필집 ‘사랑의 미로’도 있다. 그의 작품 대부분 현 시대의 문제점을 파헤치고 있다.  김씨는 왕성한 문필활동을 통해  많은 장애인들에게 좌절하지 않고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김 씨는 ‘중도시력’ 장애인이다. 경북상주에서 태어나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졸 검정고시를 합격했다. 청소년기 그의 시력은 정상이었다.
김 씨는 부산으로 이사 20대~40대까지 봉제공장을 하는 중소기업에서 직장생활을 했다. 클래식을 좋아해 비제의 ‘카르멘’을 들으면서 시상을 떠올리곤 했다. 카르멘은 봉제공장 아가씨란 뜻으로 봉제공장에 일하는 그의 처지와 상통하는 점이 있었기에 좋아했다.
감성이 풍부한 김 씨의 마음을 사로잡은 8살 차이인 아내를 만난 것도 봉제공장이었다. 미인을 차지하기 위해 마장수가 선화공주와 결혼하기 위해 노래를 만들어  아이들에게 부르게 한 것 처럼 김 씨도 아내와 사귄다는 것을 소문처럼 흘렸다. 그 결과 봉제공장에서 최고 미인이었던 아내와 결혼에 성공했다. 그런데 살아 갈수록 맘이 더 예쁘고 넓단다. 인터뷰 도중 휴대전화 메인 화면에 있는 아내얼굴을 보여 주며 “너무나 고맙고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김 씨는 봉제공장에서 익힌 기술을 바탕으로 1990년대 초 부천 송내동에 양복공장을 차렸다. 기성복 제조 및 판매 사업은 처음에는 잘 나갔지만, 값싼 중국산 제품이 몰려오면서  2000년대 초반에 결국 폐업을 하고 말았다. 그 때 나이가 40대 초반이었다.
게다가 그쯤  조금씩 나빠진 시력은 50대에 접어들면서 거의 상실했다. 유명하다는 병원은 다 찾아다녀보고 치료를 받았지만 선천성 인자가 발병, 고칠 수 없다는 청천벽력같은 진단을 받았다. 결국 아내가 직업전선에 뛰어 들어 생업을 이어 갔다.
김 씨는 더이상 아내와 아들에게 짐이 되지 않기위해 스스로 건강관리에 힘쓰며 그때 부터 시를 쓰기 시작해 지금까지 400여편을 지었다. 그는 시상이 떠오르면 녹음을 해 뒀다가 녹음을 문서화 해주는 작업을 통해 예전보다 더 쉽게 세상과 소통하며 자유롭게 쓰고 읽고 한다.
글을 읽어 주는 ‘보이스아이 리더기'를 이용해서 다른 사람의 글도 듣고 접목시켜 작품에 반영하기도 한다. 이렇게 보조기구를 이용하기 까지 시각 장애인협회의 도움이 컸다. 이렇게 신문사에 인터뷰를 할 수 있게 다리를 놔준 것도 고대천 부천시시각장애인연합회 사무국장의 공이 컸다.
김 씨는 인터뷰 말미에 “시각 장애인들이 지압이나 안마시술소 밖에 생업을 이어 갈수 있는 길이 없다”며 더 많은 시각 장애인을 위한 정부 정책이 나오기를 기대했다.
더불어 이동을 하려면 길거리에 장애물이 너무 많다고 호소했다. 특히 “인도를 마구 달리는 자전거, 가득 메운 물품들, 인도를 점령하고 있는 많은 자동차들, 볼라드 등 장애인 이동권을 제한한 것들이 너무 많다”며 “바깥 활동을 하는 동안 다리에 생채기가 나고 넘어져서 이마가 튀어 나오는 부상을 당했다”며 당국의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그의 활동을 책임지고 있는 활동보조인 한 선씨(여, 45)는 김 씨의 친한 말벗이며 제 2의 동행자다. 한 씨는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만 김 씨와 동행한다. 김 씨가 소설을 쓸 때는 조력자 역할도 하고 가끔은 쓴소리도 한다는 한 씨를 믿고 의지 하는 모습속에서 활동보조인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여실히 보여줬다. 웹소설
'태양의 일곱광채-천하의 대의' 후반부를 기대해보며 앞으로 그의 행보를 응원한다.


장상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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