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 이용훈 소장

▲안양시자립생활센터 이용훈 소장의 모습
- 장애는 언제 얻었는지.

3살 때 소아마비를 얻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어릴 때 집에 차가 있을 정도로 부유했기 때문에 내가 장애를 갖고 있다는 사실에 불편을 못 느꼈고 심지어 내가 장애인이라는 것도 인식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중학교에 입학하고 사춘기가 오면서 내가 장애인이라는 걸 깨달았다. 내 자신이 비장애인과 신체조건이 같지 않다는 것을 알고 충격이 컸다. 어릴 때부터 장애를 조금씩 인지했다면 충격이 덜 했겠지만 너무나도 급작스러웠기 때문에 정말 망치로 얻어맞은 것 같았다. 게다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버지까지 당뇨로 눕게 되셨다. 그때부터 많은 혼란스러움을 겪으며 내 스스로 장애를 극복해야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스스로 많은 노력을 해야만 사회일원으로서 비장애인과 함께 살아갈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 장애 극복의 역경은 없었는지.

젊은 시절엔 돈 버는 데에만 관심이 있었다. 정말 안 해 본 일이 없을 정도로 악착 같이 일만 했다. 그러다가 보증문제로 전 재산을 날린 후 자책감과 대인기피증으로 집에만 머물게 되었다. 그때 우연히 종교를 통해 “자신을 내려놓으라”라는 말을 듣고는 그때부터 내가 해보지 않은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다, 도자기를 만들어 영업을 시작했다. 영업하면서 정말 속상한 일을 많이 겪게 되었다. 그러면서 내가 내려놓지 않은 게 많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항상 내 자신을 위해서 살아왔고 남을 위해 산 적이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인천에 소재한 성폭력 상담사로 봉사활동을 다니며 어려운 사람을 위해 봉사하는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나로서는 새로운 세계를 경험한 것이다. 그때부터 자조모임을 시작했고 그게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 앞으로의 포부는?

나는 처음부터 장애인 권익신장 같은 거창한 포부를 품고 센터를 설립한 게 아니다. 조금씩 장애인들 서로가 도와주고 또 내가 어려운 일이 있으면 도움을 받고 서로의 정보도 공유해 보고자 자조모임을 갖게 되었다. 그런데 진행과정에서 센터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껴 열심히 일했고 작은 도움의 손길이 많아져 센터가 조금씩 커질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열정과 노력으로 앞만 보고 달려온 많은 회원과 직원들에게 언제나 감사함을 느낀다. 나는 아직도 이런 생각을 가지고 센터를 운영하고 있고 앞으로도 거창한 계획을 갖지는 못할 것 같다. 다만, 최소한 내 주변에 있는 장애인들만이라도 인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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