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 13년간 특수교육 연구···윤석용 전 국회의원 보좌관 지내
장애로 인한 여러 갈등, 포기보다 인내로 주변 사람들과 함께 해결

 

 

지난 2004년부터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에서 정책개발 등을 담당하다 윤석용 전 국회의원의 보좌관으로 활동하는 등 장애인계의 브레인으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 이문희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사무차장을 만나 그간의 활동과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들어보았다. <편집자>

-한국장총에서 오랫동안 몸담아 오셨다. 그간 일하신 소감이 남다를 것 같은데.
=독일에서 돌아온 무렵인 2004년 2월부터 일을 해왔다. 많은 장애인들을 만났고 장애인계 인사들을 만나면서 장애인복지가 변화하는데 조그마한 나사의 역할이라도 하려고 무던히 애를 썼고 결과가 조금씩 나타나는 것 같아서 사실은 좀 기쁜 마음도 있고 아직도 안타까운 마음도 있다.

-한국장총에서 현재 진행하는 사업에 대해 소개해 달라.


=복지부에서 받는 사업은 12개가 되고 단체교류협력, 단체지원, 정부전달 홍보 등 여러 가지 정책 등 이슈 파이팅(issue fighting)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하나하나의 사업이 나열을 하면 굉장히 넓은 영역을 나타내는데 2013년에 중점을 두고 하고 싶은 방향성은 수렴과 확산이다. 장애인 개인이 가진 문제를 다 모아서 공통된 카테고리로 묶고 이것에 대한 현안과 문제점의 대안을 마련한 다음에 장애인 개인과 유관기관, 특히 대정부나 대국회 활동을 하는데 많은 활용을 하고 있다.

-제 18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3대 정책인 장애등급제폐지, 부양의무제 폐지, 활동보조 24시간 지원 등 과제가 어떻게 다루어지고 있나.
=장총에서 대선을 앞두고 새누리당에 12가지공약을 전달했고 거의 다 받아들였다. 장애인과 관련된 10개는 다 받아들였고 나머지 두 개는 다른 분야에서 받아들였는데 실행하겠다고 하는 발표는 아직 나지 않았다. 그래서 장총에서 인수위에 몇 번의 공문을 보냈다. 각 정부부처가 언제 어떻게 얼마만큼의 자원을 통해서 해결할지 보여 달라고 간담회를 갖자고 했는데 지금까지는 많이 바쁜가보다. 그래서 몇 번의 이메일을 주고받으면서 아직까지 간담회 일정은 잡히지 않았고 이루어질지도 잘 모른다. 그러나 또 목표를 정하면 뚫고 나가야한다. 안건 하나하나가 해결 될 수 있도록 계속 해결 될 수 있도록 추진하겠다는 말은 들었다.

-장애인권리보장법 제정에 있어 장애인계에서는 어떻게 참여할 것 인가?
=지금의 장애인복지법과 장애인권리보장법의 차이점이 무엇이냐 하는 것부터 알아야한다. 장애인복지법은 1981년에 만들어지고 그동안 개정은 몇 번 되었지만, 아무래도 그때 당시에 만들어질 때 기본적 사고의 틀이 정부에서 개인에게 어떤 지원을 통해서 알아서 자립하도록 하는 법이다. 장애인복지법은 수혜적인 요소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장애인권리보장법으로 전환이 되면 정부에서 허락했기 때문에, 정부에서 예산을 배정했기 때문에 장애인복지의 혜택을 받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들이 사회구성원으로서 당당히 사회의 제도를 이용하게 하는 차이가 있는 것이다. 방법적인 것과 여러 가지 의견수렴과 정부에게 전달하는 여러 가지 과정과 절차들에 개입해서 우리가 추진해 나가려고 하고 있다.

-두 살 때 소아마비를 앓아 장애인이 되었는데 지금의 자리에 있게 된 원동력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예전에 장애인 극복상이라는게 있었다. 제가 장애인 극복상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저는 장애를 극복하지 못했다. 장애라는 것이 극복의 대상이 아니다. 그렇지 않은가? 장애는 나와 같이 평생을 살아갈 마누라(?)라고 정의라고 싶다. 마누라가 속 썩일 때 얼마나 가슴이 부글부글 끓는가? 그런가하면 반대로 기쁨과 성취감과 여러 가지 복합적인 것을 많이 느끼게 된다. 장애와 함께 더불어서 지금까지 살아 온 것이다.

저는 오히려 장애인이라는 것을 별로 못 느끼고 살아왔다. 십대 중반에 들어서서 고등학교 때 체육시간에 실기점수를 못 받는 경우라든가, 대학입시 때 우리때만해도 장애인은 입학을 받지 않는 리스트가 있었다. 그럴 땐 장애인 이라는 것을 느끼고 취업할 때도 장애라는 턱에 부딪히기도 했다. 극복이라는 거창한 말보다 '어? 이거 안 돼? 부딪혀볼까? 글로 한번 써볼까?' 이러한 마음으로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을 칠 때도 있었고 그런 가운데 너무 힘들다고 그래서 포기하고 싶은 때도 있었다.
장애를 갖고 살아오면서 갈등과 인내가 나를 이끌었다. 내 주위의 친구들과 함께 갈등을 놓고 같이 고민하고 행동으로 옮겼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해서 포기하기보다 인내로써 관철을 시켰던 것 같다. 당시 청량리 동사무소를 점거하고 나서 생긴 고민거리가 장애인이 문제를 밝혀내는 것은 삶의 터전에서 나온 것이라 비교적 수월했지만 그 문제를 해결할 대안을 내세우기에는 많이 부족했다. 그래서 동료들하고 장애인 스스로가 전문가가 되자고  의기투합해서 미국 가서 공부하고 저는 독일에 가서 공부하고 지금까지 실천하면서 살아온 것 같다.  

-독일에서의 13년 유학 기간 동안 특수교육을 공부했다.
=한국에서는 신학을 전공했고, 독일에 갈 때는 사회복지를 전공하려고 갔다. 그러나 독일의 대학에서는 사회복지전공 과목이 없었다. 그래서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가 장애인들에게 가장 큰 문제가 생계인데 생계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직업생활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도르트문트대학에서 주 전공으로 직업재활을 하고 부전공을 3개를 요구해서 지적장애, 지체장애, 미술치료를 전공했다. 원래는 미대를 가고 싶었으나 여건상 가지 못했는데 미술치료를 전공하면서 덕분에 제일 점수가 잘 나오기도 했다. 처음부터 시작해서 공부를 했다.

-장애인들 가운데 정치에 대한 꿈을 꾸는 이들이 많다. 일차적인 관문으로 지방의회에 진출하기 위한 방안이 있다면.
=정치의 주체행위로서 지방의회에 진출하기까지는 많은 훈련이 필요한 것 같다. 의회라는 곳이 쉽게 말하면 국민이 흘리는 눈물을 닦아주는 곳이다. 그러면 저 사람이 왜 눈물을 흘리는지 그 원인을 찾고 대책을 마련하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국회에 진출할 수 있는 분들은 그 눈물의 의미를 이성적 감성적으로 파악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어야하며 그 대안을 제시할 만한 지적인 능력, 경험적인 능력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실력 있는 정치가가 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대학 초년생부터 훈련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각 정당에서 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정말로 정치에 뜻이 있다면, 각 사회문제에 깊이 있게 토론도 해보고 학문적으로 해결책도 찾아보고 여러 가지 모델도 구상도 해보고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그것은 자기 환경에 적합하게 선택을 하면서 나가야 될 거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경기복지신문 독자에게 한 말씀 해 달라.
=자신이 이루고자하는 것에는 많은 장애물이 나타나는 게 인간사라고 생각한다. 여러 장애물을 주변 사람들과 함께 해결해 나가는 정말 당찬 여러분들이 되길 바란다.

글=오혜정 기자  / 사진=최태리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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