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은노후 홍보위원장을 하며 정치의 꿈 품어, 노인요양보호법의 근간 마련해
오정구 주민들의 숙원인 소사대곡 일반 철도 전환, 군부대 이전 숙원 풀것

 

 

안병도 위원장은 연세대학교 대학원 정치학 석.박사과정을 거쳐, 현재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겸임교수로 재직중이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천직으로 여기다, 4년전 김문수 경기도지사의 강력한 권유로, 정치를 시작해보겠다는 마음을 먹고, 고향인 고양시에 제18대 총선 예비후보로 등록했지만, 후보가 되지 못하고 이후 경기개발원 수석연구원으로 재직 중 또 다시 주변분들의 강권을 받고 당시 한나라당 오정구당협위원장으로 발을 디디게 되었다. 3년간 현장 정치인으로 활동한 그간의 행적을 되돌아보고 박근혜 후보 대선운동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만나보았다.

 

현장 정치인으로 뛴지 3년이 되었다.
=오정구 주민들의 염원을 정치에 담아내기 위해서 이런저런 일들을 했다. 우선, 오정구에 오자마자 하게 된 일이 소사 대곡 전철을 일반철도로 전환 해줄 것을 주민들의 서명을 받고 재정경재부와 국토해양부 장관을 만나서 청원을 해 7~80%정도 끌어냈다. 물론 아직도 해결할 일이 남아있다.
그러나 주민들과 함께 이끌어냈다는 보람과 자부심을 느낀다. 또 한가지는 오정동 군부대 이전을 위해 군부대 이전 당의성을 당시 한나라당과 국방부에 가서 설득을 했다. 그러나 그 문제는 역시 대통령이 결단을 내려야 가능한 것이기에 박근혜 후보로 선거운동을 도우면서도 군부대 이전은 주민들의 약속이기에 꼭지켜야한다고 강조했다. 박근혜후보가 대통령이 된다면, 보다 현실성있는 과제를 풀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선거 캠프에서 맡은 직책은 무엇이고, 선거활동을 어떻게 하고 있나?
=박근혜 후보의 선거운동본부에는 국민소통본부의 7개 산하 본부를 총괄 책임을 맡고 코디네이터 역할을 하는 상황본부장을 맡고 있다. 지금은 지역의 민심을 얻고 호소하는 일이 과제이기 때문에 아침, 저녁으로 주민들을 직접 만나고 다니며,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는 연설원을 하면서 네거티브(각종 선거 운동 과정에서 상대방에 대한 음해성(陰害性) 발언이나 행동을 일컫는 말)는 하지 않으며 왜 박후보가 대통령이 되어야 하는지 연설을 하고 있다. 첫째, 정책과 경륜 측면에서 충분히 준비된 대통령으로 국민들의 애환을 알고있는 대통령이다. 둘째, 통합과 포용의 리더쉽을 가진 여성정치인이라는 점으로 서민들을 모정으로 이해하는 대통령이다. 셋째, 위기에 강한 대통령이라고 말하고 있다.

부천시는 장애인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는데?
=그렇다. 지역활동을 하면서 항상 장애인들은 애틋한 마음을 가지고 만나는 분들이다. 부천시의 인구 밀도당 장애인의 인구가 가장 높다는 것을 알고 있는지? 부천시가 초창기에 장애인학교 및 학습시설들이 많이 있었다. 그 시설들이 편견없이 장애인들에게 방향을 제시해 줬기 때문에 부천시가 장애인 정책에 있어서는 상당히 선도적인 역할을 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들이 사회생활에 적응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현실적인 제약들을 타파하는 것이 비장애인과 다름없이 사회생활에 적응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주는 것이 진정한 복지라고 생각한다.

장애인과 대화를 많이 나누나?
=물론이다. 제19대 총선 선거 운동을 하면서 원종1동 주민센터 옆의 공원이 있는데 지역의 장애인들이 많이 모인다. 그곳에 가서 그분들과 스스럼 없이 대화하고 선천적인장애를 가진분, 후천적인장애를 갖게 된 각자의 처지와 애환이 담긴 스토리를 들어드린다. 그동안 얼마나 불편했는지 물어보고 들어드린다. 그분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무슨 도움이 되겠냐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을지 모르나 그렇지 않다. 그분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친구가 필요한 것이다. 친구가 되는 것은 서로 알아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지금도 그분들과 만남을 유지하고 있고, 요즘도 많이 만난다.

장애인들의 애로사항을 몸소 체험하신건데, 앞으로 펼치고 싶은 정책이 있는가?
=흔히 우리가 말하는 장애인복지하면 장애인연금이라든지 이런걸 먼저 생각하는데 저는 그분들과 대화속에서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편견없이 이 사회에 똑같이 적응하고 기여할 수 있는 기회를 드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장애인복지법 규정이 사실 사문화 된 것 들이 많다. 예를 들어 장애인의무고용을 해야하는 업체에서 이행하지 않아 과태료를 내는데 왜 내나? 결국 장애인을 고용하지 않아도 되는 대가로 내는 것 아닌가? 장애인에 대한 편견없는 인식개선과 함께 제도도 바뀌어야하는 것이 비장애인의 의무이며 모랄이다 이런 의식을 갖게 해야 한다. 노르웨이에 갔을 때 경험을 말하자면, 빌딩이며, 도로며 모든 시설에 장애인을 위한 제반시설이 구석구석 갖춰진 걸 보고 장애인이 한 사회의 일원으로 함께 살아간다는 인식과 함께 기본 인프라를 갖춰주자는 철학과 정신이 있었을 때 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우린 그게 없다. 그래서 모성의 리더쉽이 이제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어렵고 힘든 분들을 세세한 부분까지 살필 줄아는 분이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밝은노후를 만드는 사람들의 모임의 홍보위원장으로 활동도 했는데?
=사실은 처음에 정치를 시작하겠다는 계기가 밝은노후 활동을 하며 가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당시 박상천 의원이 자식들이 부모를 모시지 않으면 형사처벌을 받게 한다는 내용의 ‘효도법’이라는 것을 만들어 통과시키려고 했다. 저는 반대청원운동까지 하며 반대했는데 그 당시만 해도 자식들이 부모를 모시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노인의 문제는 가정의 문제로 제도적으로 가둬두고 있었다. 어느 자식인들 부모님께 못하고 싶은가? 마음은 있으나 닿지 못하는 것이 현실 아닌가? 노인복지의 문제는 궁극적으로 국가가 책임지고 사회가 공동으로 분담해 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해 반대했다. 밝은노후에서 여러차례 공청회도 열고 주장을 펼치고 반대운동을 했지만, 설득력이 없더라. 그당시 김성순 의원을 찾아갔는데 국회의원 한사람이 동의하게 되자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이 되더라. 결국 효도법이 통과되지 못했다. 그래서 지금 효도법에 의해 노인복지를 시행하는 것이 아니고, 노인복지관련 사회의무를 제도화화면서 제 궤도에 들어섰다고 볼 수 있다. 국회의원 한사람의 힘이 수많은 시민운동가의 힘보다 크다라는 깨달음을 통해 정치를 할 필요도 있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현재 대학원에서 강의를 하는데 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은가?
=글쎄다. 내 강의를 수강하는 학생들이 제일 많아서 제일 넓은 강의실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웃음)

일본 게이오대학에 전임강사로도 있었는데 한국과 다른점이 있다면?
=일본에는 1990년도에 갔는데 게이오대학의 종합정책학부에 한국전문가로 갔다. 한국의 정치.사회.문화.역사 심지어 언어까지 강의를 했는데 일본은 지역전문가를 키우기위해 역시 전문가를 초빙하더다. 그당시 나의 강의를 들은 학생중 지금 일본영사관의 영사로 오고, 일본에서 한국학을 강의하는 교수로 재직하고있다. 그래서 일본은 매우 전문화된 영역을 존중한다는 것이 다른점이다. 복지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일본에는 재가복지법이라는 것이 있는데 지금의 우리나라의 노인장기요양보호법과 같다. 밝은노후의 홍보위원장을 하면서 일본 재가복지법을 골격으로 해서 우리나라 노인장기요양보호법의 근간을 번역해서 만들었다. 그 내용이 현 정책에 맞게 수정되었다. 그래서 일본은 전문성은 있지만, 우리나라보다 열정은 좀 떨어진다고 느꼈다.

저서한 책 소개를 한다면?
=한국정치뿐만 아니라 정치사상에도 관심이 많았다. 특히 가치이념철학에 관한것들로 민주주의와 자유주의가 적용되는 범위에 있어서 여러가지 이즘들이 있어 거기에 관계된 것을 주로 번역하고 저술했다. 이젠 연구하고 머릿속으로 그렸던 이상적인 가치를 현실에 맞게 적용시키는 것이 현재의 과제라고 생각한다.

건강관리는 어떻게 하고 있나?
=자전거를 탄다. 자전거를 타면 건강에도 도움이 되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마음을 나누고 함께 이야기도 할 수 있어서 좋다. 집사람과 같이 타는 2인용자전거도 있어 함께 탄다.

오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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