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통합 이끄는 ‘지역사회 연계활동 사회통합프로그램’ 호평

400평 뒷동산 텃밭에선 장애아, 비장애아 모두 “행복해요”

400평 뒷동산 텃밭에선 장애아, 비장애아 모두 “행복해요”

아침부터 일곱빛깔 무지개반(만 3세반) 아이들이 뒷동산으로 올라갔다.
장애아동 희철(가명)이는 뒷동산 가장 위쪽에 있는 토끼장으로 먼저 뛰어갔다. “토끼한테 당근을 줄 때가 제일 좋아요” 토끼도 희철이가 주는 당근이 좋은지 오물오물 받아먹기에 바쁘다. 뒷동산에 오른 아이들은 저마다 할 일을 찾았다. 규림이는 연못에 있는 물고기에게 먹이를 주었고 도현이는 상추에 물을 주었다. 예찬이는 조용히 산책을 했고 몇몇 아이들은 나무에 오르며 놀이를 했다.

▲ 어린이집 뒷동산의 텃밭

부천 소사구에 위치한 유진어린이집에서 이런 풍경은 전혀 낯설지 않다. 많은 어린이집이 방울토마토 따기 체험을 위해 버스를 타고 시외로 나가지만 유진어린이집 아이들은 그럴 필요가 없다.
어린이집 뒷동산 약 400평에 토끼장, 연못, 텃밭 등이 가꿔져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이곳에서 고추와 상추, 깻잎을 심고 고구마와 감자를 캔다. 옥수수와 방울토마토를 따기도 하고 토끼와 함께 뛰어 놀기도 한다.
유진어린이집은 1996년 설립된 사회복지법인 소사유진복지재단이 저소득층 자녀와 장애 아동을 위해 운영하는 보육기관이다.

14년간 지역사회에서 꾸준하고 성실히 영유아 보육을 실천하고 있는 이 어린이집은 자연친화적인 교육으로도 유명하지만 장애 아동과 비장애 아동 간 통합교육의 성공모델로 회자된다.
장애가 있든 없든 서로를 선입견 없이 바라보며 자연스럽게 친구가 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유진어린이집은 지난 7월 경기도장애인종합복지관이 주관한 제2회 우수통합교육프로그램 공모전에서 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발도르프 교육을 기초로 자연친화적인 환경교육과 공동체교육, 유아 내면의 개별성을 존중하는 전인 교육을 추구하는 유진어린이집의 통합보육은 아이들을 날마다 새로운 교육의 장으로 이끌고 있다.

▲ 김영지 원장이 환하게 웃고있다.

김영지 원장은 “유진어린이집에서는 생활과 보육프로그램에 있어서 보다나은 질적인 발전과 변화를 위해 영유아들의 연령과 발달 수준에 적합한 환경을 마련해 주고 있다”며 “소사유진복지재단이 1998년 설립한 이 어린이집은 실은 아주 특별한 계기를 통해 태어났다”고 밝혔다.
그 계기를 밝히려면 너무나 아프고 슬픈 사건을 기억해야 한다.
1990년 3월 서울 홍제동의 반지하 방에서 화재가 났다. 당시 5살이었던 혜영이가 3살 영철이와 성냥개비로 불장난을 하다가 불이 난 것이다. 그러나 혜영이와 영철이는 집을 빠져나오지 못하고 화마에 휩싸였다. 방문이 밖에서 잠겨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정황이 소방관들에 의해 재구성됐는데 그 아픔과 슬픔을 글로 쓰기가 어렵다.
뒤늦게 사고소식을 듣고 달려온 엄마와 아빠는 “용서해 달라”며 울부짖었다.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맡기지 못하고 방문을 걸어 잠그고 나간 것이 잘못이었다.
당시 혜영이와 영철이의 아빠는 유진그룹 계열사의 경비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끔찍한 사고 소식은 곧 당시 유진그룹 유재필 회장에게 전해졌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복지재단 설립과 가난한 저소득층 자녀를 위한 어린이집 설립이 추진됐다.
유진어린이집은 바로 혜영이와 영철이 두 아이의 고통과 아픔이 희망과 기쁨으로 피어난 곳이다.
지금 유진어린이집에서 두 아이의 흔적을 찾아볼 수는 없지만 두 아이가 어린이집을 다녔다면 누리고 즐거워했을 많은 것들이 있다.


▲ 뒷동산에서 아이들이 밤을 보며 관찰하고 있다.

400평에 달하는 뒷동산은 유진어린이집이 자랑하는 것 중에 하나다. 그 뒷동산은 장애아 통합보육프로그램과 함께 유진어린이집을 다른 곳과 차별화하는 자랑이 되고 있다.
어린이집은 613평 대지에 204평 건물로 지어져 5개의 보육실과 조리실, 양호실, 드림홀, 수영장 등이 갖춰졌다. 90명의 아동과 17명의 보육종사자들이 즐거운 생활을 하는 보금자리다. 
이런 시설과 준비는 유진어린이집을 단번에 지역사회에서 가장 인기 있는 어린이집으로 만들었다. 입학 대기자가 30여 명에 달하고, 입학을 위해 광주광역시에서 집과 직장을 모두 인천으로 옮겨가며 찾아오는 사례까지 생겼을 정도다.

어린이집에서 운행하는 버스의 좌석을 어린이 전용 좌석으로 교체한 일은 이러한 인기를 반증한다. 대부분의 어린이집이 운행버스의 좌석을 어른용으로 그대로 사용하지만 유진은 어린이 체형에 맞는 것으로 모두 바꿨다.
유경선 소사유진복지재단 이사장은 “아동학대에 관한 사건들이 언론에서 회자될 때마다 분노와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으며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일이라고 다짐한다”며 “우리 사회에 무한한 가능성을 안겨줄 아이들이 한치의 소홀함도 없이 성장하도록 지원과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유 이사장의 이러한 다짐은 소사유진복지재단의 세출내역을 보면 드러난다. 지난해 유진복지재단이 유진투자증권(유진그룹 계열사)으로부터 확보한 2억4000만원의 후원금 중 약 70%에 달하는 1억7200만원이 유진어린이집에 사용됐다.
영유아 교육사업에 대한 남다른 비전과 식견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 김밥말이 놀이

원아 90명 중 11명에 이르는 장애 아동들의 생활은 유진어린이집이 운영하고 있는 ‘지역사회 연계활동을 통한 사회통합 프로그램-이웃과 함께 세상을 알아가는 아이들’로 빛을 발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비장애 아동의 입장에서는 장애에 대한 편견 없이 장애 아동들과 함께 생활함으로써 자연스럽게 배려와 존중의 인성교육을 받게 한다.
반면 장애아동의 입장에서는 직접적인 신체접촉과 활동을 크게 늘림으로써 사회성과 정서적 안정, 친구와 선생님에 대한 신뢰를 높일 수 있게 했다.
무엇보다 어린이집의 외부활동이 비장애아동을 기준으로 준비되는 경우가 많은 현실에서 장애아동과 비장애아동이 동등하게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에 대해 알고 탐색하는 시간을 갖도록 준비됐다.

▲ 대중교통 이용해보기

지역사회연계활동에는 공원, 제과점, 꽃집, 서점 방문하기 뿐만 아니라 은행, 대중교통 이용하기 등과 같은 사회참여를 준비하는 활동이 포함됐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 장애아동들은 가정에서 자발적으로 심부름을 하거나 직접 참여를 원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또한 먼저 친구의 손을 잡고 함께 하기를 원하며 상호작용이 늘어났다. 비장애아동들도 장애아동의 특성을 이해하고 먼저 다가가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특히 가족지원 프로그램에는 장애아동이 가족과 함께 지역사회를 체험하고 느낄 수 있도록 갯벌체험, 눈썰매 타기, 포도밭 체험 등과 같은 활동이 진행됐는데 긍정적인 변화도 나타났다.
장애 아동 학부모들이 매월 정기적인 모임을 통해 어린이집과 유기적인 커뮤니케이션에 나선 것. 이러한 변화가 시작되자 어린이집은 1년에 두 번 강사를 섭외해 다양한 강의와 세미나 자료를 제공하게 됐고 교사들은 이 모임에 함께 참석해 전문지식을 높이고 학부모들과 끈끈한 유대관계를 맺게 됐다.

▲ 문구점에서 물건을 사는 아이의 모습

장애 아동이 어린이집을 졸업한 후 일반 초등학교로 진학하면 어린이집 교사들이 직접 학교를 방문해 담임 교사와 협의하는 것도 특별하다.
장애 아동과 먼저 생활한 어린이집 교사가 초등학교 교사에게 장애아동의 특성과 생활태도에 대해 알려주자 장애 아동이 학교에서 적응하는 능력이 높아진 것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이처럼 유진어린이집은 지역사회와 끊임없이 상호작용하고 소통하면서 장애 아동이 자연스럽게 그 자신의 삶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돕고 있는 것이다.
김영지 원장은 “유진어린이집의 자연친화적인 발도르프 교육은 우리의 문화와 정서에 맞도록 생태학적 교육관점에서 재해석해 장애 아동들도 당당한 사회 일원으로 성장하도록 돕고 있다”며 “장애 아동들이 완전한 사회일원으로 커나가기 위해서는 가정과 학교 뿐만이 아니라 지역사회 전체가 나서서 더 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송하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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