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의 자립위해 싸워나갈 것

장애인 운동가에서 지역장애인의 대변자로 변신
복지사각지대에 놓인 장애인에 많은 지원 필요해
지회에 대한 지역사회의 신뢰회복이 가장 큰 보람 



-앞으로 과천시지회를 더욱 발전시켜 나가기 위한 각오를 말씀해 달라.
지난 2006년 3월부터 경기도지체장애인협회 과천시지회(이하 과천시지회)를 이끌어 오고 있는 이훈우 지회장. 장애인운동가로서 전국을 무대로 활동하던 이 지회장이 과천시의 장애인들과 함께 해 온지 벌써 3년째가 되었다. 지난 17일 이 지회장을 과천시지회 사무실에서 만나 파란만장한 장애인운동가 시절의 이야기와 과천지역의 장애인 대변자로서 활동에 대해 들어보았다. <편집자>


-과천시지회를 3년째 이끌어 오고 계신다. 그 동안의 활동 소감에 대해 말씀해 달라.
=제도권에서 활동하기 전에는 장애인 운동을 했었다. 장애인들의 투쟁 현장에서 늘 생활하다가 지역의 장애인들과 호흡을 맞추는 일은 비슷하면서도 매우 다른 것 같다. 활동무대가 좁아진 대신 지역의 재가 장애인들을 꼼꼼히 챙기고, 관계기관과 협조하는 일들을 열심히 해 온 것 같다. 

=제도권에서 활동하기 전에는 장애인 운동을 했었다. 장애인들의 투쟁 현장에서 늘 생활하다가 지역의 장애인들과 호흡을 맞추는 일은 비슷하면서도 매우 다른 것 같다. 활동무대가 좁아진 대신 지역의 재가 장애인들을 꼼꼼히 챙기고, 관계기관과 협조하는 일들을 열심히 해 온 것 같다. 


-청년시절부터 장애인운동을 하신 것으로 알고 있다.
=지난 1988년부터 장애인운동의 시발점이 되었던 울림터와 장애운동청년연합 등에서 장애인의 인권, 생존권, 이동권 등을 위한 활동을 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장애인의 삶은 우리 사회의 장애인에 대한 부당한 차별과 그릇된 인식으로 인해 열악하기 그지없다.


횡단보도의 턱이 왜 낮아졌는지 아느냐고 물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잘 모를 것이다. 지난 1984년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인 고 김순석 씨가 도로의 턱을 없애달라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음독자살하는 사건이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거의 25년 전 일이다. 장애인의 이동권이나 편의시설에 대한 개념조차 없던 시대에 도로의 턱과 자신의 목숨을 바꾸었던 것이다.


또한 못 배우고 가난한 장애인들이 정부의 지원도 없던 시절, 노점상이라도 해서 생계를 유지하려고 무던히 애를 썼다. 그러나 노점상 단속이 나오면 비장애인들은 물건을 가지고 도망이라도 갈 수 있지만 장애인들은 그 자리에서 물건도 뺐기고 발길질과 주먹질 등 온갖 폭력을 당하는 수밖에 없었다.


장애인 노점상과 관련해 지난 1994년 휠체어에서 물건을 실어놓고 판매를 하던 고 최정환 씨가 단속에 의해 빼앗긴 물건을 찾으려 해당 구청을 찾았으나 심한 모욕을 당하자 미리 준비해간 시너를 온몸에 뿌려 분신자살을 시도한 일이 있었다. 최씨는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결국 숨졌고, 이 사건을 계기로 장애인과 시민단체, 대학생 들이 힘을 모아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이러한 장애인의 처절한 생존현장에 함께 하며 투쟁했다. 이러한 장애인 운동이 과거의 일로 생각되겠지만 모습만 바뀌었을 뿐 지금도 장애인운동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장애인운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을 것 같다.
=두 살 때 소아마비로 한쪽 다리를 못 쓰게 되었다. 목발을 짚고 다니는 모습을 본 또래 아이들이 놀리곤 했는데 어린마음에 굉장히 큰 상처였던 것 같다. 그래서 놀림을 받은 이후로는 집에만 있었는데 움직임이 거의 없다보니 다른 한 쪽 다리마저 기능이 약해지더라. 이러한 마음속의 상처, 사회로부터 거부당한 기억들에 대한 부당함을 느낀 것 같다. 성장하면서 장애인 운동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도 이러한 부당함에 저항하기 위한 몸부림이었을 것이다. 


-운동권에서 활동을 하시다가 제도권으로 들어오셨다. 지체장애인협회와는 어떻게 인연이 되었나?
=장애인 운동을 하던 중 제도권으로 들어가자는 움직임이 있었다. 당시 같이 활동하던 사람들도 대부분 장애인 단체 등에 소속되어 일하기 시작했고 이러한 변화 속에 지체장애인협회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과천시지회장으로 취임할 당시,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많았을 텐데.
=과천시지회가 안고 있는 문제가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이러한 부분을 해결할 테니 과천으로 내려 보내달라고 중앙협회와 경기도협회를 설득했다. 지회장에 임명된 뒤 젊은 층을 많이 확보해 개혁을 단행했다. 우리가 지금은 어렵지만 외부의 후원을 바라지 말고 자체적으로 일어나자고 결의했다. 우리가 열심히 하다보면 누군가는 인정을 해 줄 것이라는 굳은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 주차장 수탁과 관련해 금전적인 부분도 해결해야 하고 지역사회에서 과천시지회를 바라보는 시각도 좋지 않아 상당히 어려운 여건에 처해있었다. 그러나 금전적인 문제는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하여 해결을 한 상태이고 이를 해결하면서 관계기관이나 주변 단체, 장애인회원들로부터 신뢰를 많이 회복했다. 마음고생도 많이 하고 힘들었지만 그만큼 보람도 많이 느낀다.


-현재 주차장은 어떻게 관리되고 있는가.
=주차장 수탁문제로 인해 과천시에서 장애인 단체들 간의 연합회를 구성하도록 했다. 연합회 구성 전에는 지체장애인협회에서 모두 다 관리를 했지만 수탁 문제가 발생하면서 연합회 소속 4개 단체가 공동으로 관리하도록 했다. 수입과 지출 등 모든 결정들이 내려지려면 4개 단체장의 도장이 필요하다. 주차장 관리 수입도 똑같이 분배하도록 하는 등 우리 지회입장에서는 엄청난 손실이라고 할 수 있다. 


-과천시 장애인들의 최대 복지 현안은 무엇인가.
=겉에서 보면 과천은 참 살기 좋은 도시이다. 재정자립도 전국 1위, 땅값 전국 1위 등 대외적으로는 모든 면에서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은 도시이지만 장애인들의 현실은 비닐하우스에서 거주할 정도로 처참하다. 지난해에는 비닐하우스에서 불이 나 미처 대피하지 못한 80대 장애인이 숨지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제대로 된 주거를 보장받지 못하기 때문에 일어난 가슴 아픈 사건이 아닐 수 없다.


복지서비스의 사각지대에 있는 장애인이 너무 많다. 어떤 장애인은 물이 안 나와서 물을 길어다 식수로 사용하고, 어떤 장애인은 전기가 끊겨 촛불을 켜고 지낸다. 정부가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은 보장해 주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연합회 차원에서 다 같이 뜻을 모으기를 주차장 수입도 있고 후원금도 있으니 관내 생활이 열악한 장애인들에게 지원을 해주자고 했다.


현재 250명의 기초수급 장애인들에게 매월 5만원씩 지원하고 있는데 전국에서도 이런 곳은 없을 것이다.
또한 주거가 열악한 장애인들을 위한 영구임대 아파트 건축을 추진하고 있다. 장애인이 비닐하우스에서 처참히 죽어가는 일이 더 이상 일어나서는 안 된다. 연합회 차원에서 과천시와 대화를 통해 영구임대 아파트를 짓기로 이야기가 되어 있는데 구체적인 방법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내년에는 장애인복지관도 들어설 계획인데 복지관에 연합회 소속 4개 단체도 입주하게 된다. 현재 부지가 확보되었는데 애초 목표로 한 내년 4월보다는 늦어질 것 같다. 또한 경제사정이 수급자도 아니고 차상위도 아닌 어중간 한 회원들이 많다. 이 분들을 위한 수익사업을 추진하고 있는데 올 해 안으로 몇 가지가 될 것이다. 수익사업이 진행되면 지역의 장애인들을 경제적으로 지원해 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앞으로 과천시지회를 더욱 발전시켜 나가기 위한 각오를 말씀해 달라.
=개인적으로는 그 동안의 문제를 해결하느라 여러 가지로 힘든 상황이지만 주변에서 그러한 부분을 높이 평가해 주고 계시니까 이에 힘입어 지역장애인을 위해 많은 일을 해 나가고 싶다.


정리 = 오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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