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기초생활수급자, 차상위에 만성질환자, 장애인 많아

 기초생활수급 가구의 의료 부담 늘리는 건 복지의 후퇴


2010년 우리나라의 가구별 소득이 최저생계비 이하인 빈곤층은 340만 명에 이른다. 최저생계비의 100~120%에 속하는 이른바 차상위 계층도 전체 인구의 3.8%(185만명)로 나타났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전국 1만8,000가구를 표본 조사한 ‘2010년 빈곤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빈곤층인 기초생활수급자와 차상위 계층을 더하면 전체 빈곤층 규모는 약 530만명(순수 소득기준)으로 늘어난다.
전체 인구의 약 10% 가량이 빈곤의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가난과 싸우고 있는 것이다. 이들에게 건강과 의료 문제는 생존과 직결된다.


그런데도 정부는 최근 기초생활보장제도를 대폭 손질하기로 결정하면서 기초생활수급자의 의료비 부담을 늘리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정부는 기초생활수급자들이 ‘도덕적 해이’에 빠져 불필요한 의료서비스를 과다하게 이용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정부와 일부 언론이 기초생활수급자의 병원 이용행태를 지적하며 ‘도덕적 해이’ 운운하는 근거는 평균입원일수와 연평균 수진횟수 등이 일반 국민에 비해 많기 때문이다.


기초생활수급자의 평균입원일수는 9.2일로 일반 국민의 4.5일보다 약 2배 많았으며 연평균 수진횟수는 67.7일로 일반 국민의 27.3일보다 2.5배 많았다.
정부 관계자는 “일반 국민은 건강보험료를 내면서 1년 평균 80만원의 의료비를 쓰고 있지만 의료급여 수급자들은 건강보험료를 내지 않으면서 1년 평균 300만원을 쓰고 있다”며 “본인부담금을 올려서 의료서비스 이용을 줄이도록 유도하고 여기서 아낀 돈으로 저소득층 중증질환을 치료하는데 쓰는 것이 맞다”고 말하고 있다.


얼핏 들으면 정부의 분석과 지적이 대단히 합리적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사실은 이와 다르다. 우리나라 전체 가구 중 한 가구에 만성질환자가 있는 비율은 22.4%인 반면, 기초생활수급 가구 중에 만성질환자가 있는 비율은 63.8%, 차상위 가구는 58.3%로 비빈곤 가구의 2~3배에 달했다.
지출항목 중 의료비가 부담된다는 가구 비율도 빈곤층에서 월등히 높다. 전체 가구 중 의료비가 부담스럽다고 답한 비율은 33.1%였으나, 기초생활수급 가구는 45.5%, 차상위 가구는 52.7%가 부담을 느낀다고 응답했다.


상대적으로 기초생활수급을 받거나 차상위 계층이 많은 장애인의 경우 전체의 70% 정도가 자신의 장애와 직·간접적으로 관련있는 만성질환을 앓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평택대 재활복지학과 권선진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다수의 장애인들이 만성질환을 앓고 있으며, 고령장애인도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어 주요 만성질환을 조기에 발견, 관리할 수 있는 건강증진사업의 확대가 필요하다”고 한다.
장애인 빈곤 현실을 반영하듯 장애인들이 국가에 가장 우선 요구하는 사항도 ▲소득보장(38.2%) ▲의료보장(31.5%) ▲고용보장(8.6%) 등의 순으로 나타나 의료보장이 두 번째로 많았다.


한마디로 기초생활수급자와 차상위 계층은 만성질환 비율과 장애 비율 등이 일반 국민에 비해 월등히 높아 의료서비스를 많이 이용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이러한 현실을 무시하고 정부가 기초생활수급자의 의료비 본인 부담을 늘려 병원이용을 막는다면 이는 기초생활수급자들을 사지로 내모는 것과 같다.
정부가 기초생활보장제도를 손질하기로 하면서 내놓은 중요한 논거 중 하나는 기초생활수급자가 각종 혜택을 독차지하면서 차상위 계층보다 소득이 많아지는 역전현상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정부는 기초수급자의 혜택을 대폭 줄여 차상위계층에 나눠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러나 복지혜택은 그 대상과 범위를 늘리는 것이 맞다.
이에 대해 복지 단체 관계자는 “가난한 형제가 음식을 먹는데 형이 조금 더 먹는다고 이를 뺏어서 동생에게 주겠다는 생각은 누가 봐도 옳지 않다”며 “그보다는 형과 동생 모두 굶지 않고 충분히 먹을 수 있는 음식을 공급하는 것이 복지의 기본이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또 “빈곤층을 대상으로 한 의료 서비스는 가난한 사람이 병원에 갈 수 있도록 도와주기도 하지만 빈곤 예방과 빈곤 탈출에도 기여한다”며 “가난과 건강은 떼려야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에 있으므로 기초수급자를 대상으로 한 본인부담금 상향방침을 철회하고 더욱 확고한 기초생활수급 지원체계를 확충해야 한다”고 밝혔다.


빈곤사회연대 관계자는 “복지예산 총액은 그대로인 상황에서 범위만 확대하면 기존 수급자가 탈락하거나 급여액이 줄어드는 등 복지의 후퇴를 불러올 것”이라며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는 복지급여를 더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주라는 것은 국가의 책임을 방기하는 처사”라고 비판했다.

송하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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