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만드는 작은 세상, 그리고 이야기

동두천시장애인근로복지관 근로장애인들 대상으로 단원 선발
훈련과 연습 거쳐 어린이집 등 매월 5~6회 외부 공연 실시

“장애인도 세금을 내는 위치에 오르도록 노력할 것”
"엉덩이 보여주지 말고 앞을 보여줘야지. 팔 팔 팔! 입! 입 안해? 같이 움직여아지.
 수염만 계속 만지지 말고 안경도 올렸다가 앞도 한번 봤다가...."

동두천시장애인종합복지관 2층 강당, 무대 뒤는 쉼 없이 움직이는 백조의 다리를 보듯 정신이 없다.
경기도 최초 장애인 인형극단 "꿈꾸는 풍경"이 인형극 <늑돌이의 친구 사귀기>라는 작품을 연습하는 모습이다.

160cm정도의 높이로 막혀진 무대 뒤, 13명의 단원들은 각자 맡은 역할의 장대 인형을 하나씩 손에 들고 부지런히 인형의 팔과 입을 움직인다.
흘러나오는 대사에 맞게 입도 움직여야 하고 감정이 잘 표현될 수 있게 적절히 손동작과 발동작, 인형의 시선 등을 처리해야한다.
'이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지만 관중들에게 더 완벽한 공연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인형의 높이와 간격, 등장과 퇴장하는 타이밍까지 꼼꼼히 점검해야한다.

"조명을 끄면 무대 중간이 안보이니까 야광으로 붙여놓은 거예요"라며 단원들을 지도하던 복지사가 무대를 설명한다.
꿈꾸는 풍경은 성인 지적·간질·자폐성 장애인으로 구성된 인형극단으로 지난해 10월 창단되었다. 비장애인과 함께 호흡을 하며 '보는 문화'가 아니라 '보여주는 문화'를 만들기 위한 인형극단이다.

평소 장애인이 하는 공연의 경우 편견 아닌 편견 속에서 공연이 이루어진다. 장애인은 “어려워, 못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 잘 할 수 있는 것이 있고, 더 뛰어난 점이 있다는 인식을 바꿈으로써 성인 장애인들이 사회로 나아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고자 인형극단 꿈꾸는 풍경이 만들어졌다.
이미 수십 차례 어린이집, 사회복지기관, 유치원 등에서 공연을 진행한 바 있고, 요즘은 매월 5~6회 정도의 외부 공연이 잡혀 있을 만큼 빡빡한 공연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특히 이번 4월은 장애인의 날이 있어 하루에 2회 공연을 해야 할 만큼 인기가 많다.
왜 이렇게 많이 찾을까. 인형극단 꿈꾸는 풍경의 박민영 원장(31)은 "요즘 어린이집과 유치원, 사회복지기관들은 찾아오는 방문 공연을 많이 원한다. 그리고 인형극을 보신 분들이 많이 신기해하시고 장애 아동을 둔 부모들도 나중에 내 아이가 저렇게 자라주기를 바라는 마음에 공연을 보고 나면 절로 희망이라는 단어가 떠올라 좋다고 말씀하신다. 특히 우리 꿈꾸는 풍경은 인형을 만드는 체험프로그램이 병행되기 때문에 아이들과 30분 정도 인형을 같이 만들다보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런 부분을 많이 좋아해주셔서 소문이 많이 나는 것 같다"고 대답한다.

이제는 인형조작부터 무대 장치까지 모두다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그야말로 인형극단으로써의 모양새를 갖추고 있지만 지적, 자폐 장애인들이 온전히 하나의 인형극을 공연하기까지 쉽지만은 않았다. 무대 뒤에서 적어도 30분, 많게는 1시간 동안 서 있어야 하는데, 자폐성 장애인은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소리 지르는 게 특징이라 무대 뒤에서 조용히 있지 못하는 게 문제였다. 키보다 높은 무대 위로 장대 인형을 계속 들고 있어야 했기 때문에 팔도 많이 아파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장대 인형을 들고 있는 훈련부터 시작해야 했고 그만큼 단원들은 많이 힘들어했다.

스토리를 익히고 인형하고 친해지기까지 3개월, 더빙된 성우의 목소리에 길들여 인형에 감정을 표현하는 데까지 3개월, 꼬박 6개월의 시간을 맹훈련한 끝에 지금 단원들은 30분은 물론 1시간도 거뜬히 견딘다. 지금은 어린이집에서 인형 만들기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하면 어린 아이들과 함께 사진도 찍고 같이 인형도 만들 수 있을 만큼 여유가 생겼다.

단원들은 동두천시 장애인근로복지관에서 일을 하면서 동시에 매일 한 시간씩 인형극 연습도 하고 있다. 대부분 지적 장애를 가지고 있어 매일같이 반복해서 연습하지 않으면 자꾸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실제로 연습을 지켜보니 세세한 감정까지 표현해야하는 고난이도의 훈련이었다. 처음에는 복지사와 함께 동선과 동작을 익히고 그것을 계속 반복해 스스로 외울 수 있을 때까지 끈질긴 연습이 이루어진다.

인형극 <늑돌이와 친구 사귀기>는 여영숙 저자의 창작극으로 늑대가족이 이사 가면서 생긴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보기에 험상궂고 장애를 가진 늑돌이네 가족을 모두들 싫어하고 친구 되기를 거부 한다. 그러나 그에 실망하지 않고 주인공 늑돌이는 적극적으로 자기 자신을 친구들에게 맞추어 늑대에게 가장 소중한 송곳니를 뭉뚝하게 만들어 친구들에게 다가가려고 노력한다. 그 틈을 이용해 나쁜 여우는 자기 욕심을 채우고 늑대가족에게 누명을 씌우려고 하지만 결국 치과의사 염소 할아버지가 증인이 되어 모든 사실이 밝혀져 늑돌이는 좋은 친구들을 얻었고 숲 속 마을에 좋은 가족으로 함께 살게 되었다는 스토리다.

겉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녹여낸 이야기 속에 장애인을 바라보는 비뚤어진 우리의 시선도 느껴진다. 이 때문에 인형극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장애인에 대한 편견도 버릴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인형극을 하는 단원들에게 많은 변화가 생겼다.
폭력성을 가지고 있던 늑돌이역의 박종환씨(지적 장애 2급)는 인형을 만지고 나서 본인의 감정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 인형에 자기의 감정을 넣어 풀어버리는 경우가 많아져 폭력성이 눈에 띄게 가라앉았단다.

또 최근에 인형극단에 입단한 정인철씨(자폐성 장애 1급)는 평소에는 계속 뛰어다니고 소리치지만 인형극만 시작하면 알아서 스스로 조용해진다.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상스러운 말들도 굉장히 잘 습득했는데, 인형극을 하면서 표현이나 말들도 부드럽게 변화됐다.

여우 역할을 맡고 있는 이정훈씨(25, 지적장애 3급)는 "전에는 아이들과 잘 이야기도 못했는데, 지금은 처음 본 아이들과도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좋다“며 ”어린이집에서 공연한 적이 있었는데, 공연이 끝나고 아이들이 여우를 찾으면서 달려들 때가 가장 보람 있었다"라고 말했다.

박민영 원장도 "단원들이 재미있어 한다. 일을 하면서 자꾸 인형극 연습은 언제 하냐고 묻는데, 일은 힘들지만 인형극은 일로 생각을 안 하는 것 같다. 인형극은 이 분들에게 하나의 활력소"라며, "가끔 배역을 바꾸는 경우가 생기는데, 그러면 화를 내는 분들도 있다. 자신의 캐릭터에 대한 욕심도 강하고 금세 인형과 나 자신을 동일시하는 경향도 보인다"라고 전했다.

단원들은 연습을 마치고 난 후에도 하나같이 인형에서 손을 떼지 못한다. 연습할 때는 한마디도 안하던 사람들이 끝나자마자 봇물 터지듯 말을 하기 시작한다. 그동안 어떻게 참았을까 싶지만 그것이 그들의 프로의식이었고 좋아서 하는 일에는 그 어떤 것도 장애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꿈꾸는 풍경 인형극단 문의 031.867.0855~6  http://club.cyworld.com/dreamview
박윤경 기자

<꿈꾸는 풍경 인형극단 박민영 원장 인터뷰>

“장애인도 세금을 내는 위치에 오르도록 노력할 것”

▶ 꿈꾸는 풍경이라는 이름은 어떻게 지어졌나.
뜻이 참 좋다. 우리도 꿈이라는 게 있는데, 장애인들은 꿈을 꿀 수 있는 반경이 정해져 있다. 특히 단원들은 IQ가 70 이하인 사람들이 많아서 꿈을 꾸는데 한계가 있다. 꿈꾸는 풍경은 장애인인 우리도 꿈을 꿀 수 있고 단순히 꿈을 꾸는 것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 우리의 꿈을 모아 그려서 큰 풍경을 만들어보자는 의미로 지어졌다.

▶'보여주기 위한 문화' 활동으로 인형극을 선택한 이유가 있다면.
현재 장애인 합창단도 많고 밴드도 많고 풍물도 많다. 하지만 우리는 다른 팀들과는 다른 뭔가 특색 있는 것을 해보고 싶었다. 그러던 중 인형은 누구에게나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기 때문에 아이들 뿐 아니라 성인들도 다 함께 즐길 수 있는 인형극을 해보자라고 의견이 모아졌고 현대 인형극회에서 장대 인형을 직접 제작해주셔서 시작하게 되었다.

▶ 단원은 누구나 될 수 있나.
아니다. 일단 기본적으로 동두천시 장애인근로복지관에서 일하는 35명의 근로자가 대상이다. 지원자들 가운데 오디션을 거쳐 선발하게 되는데, 지원율이 높아서 보호 작업장의 근로자가 아닌 분들도 가끔 신청하지만 처음부터 보호 작업장 안에 있는 근로자들이 사회로 나아가는 발판을 만들기 위해 시작한 사업이었기 때문에 철저히 그 분들만을 대상으로 모집하고 있다.

▶ 오디션을 본다고 했는데, 그럼 선발 기준은.
심사 위원은 복지관 선생님들과 전문 강사 분들이 한다. 인형과 대사 한 소절을 주어 연기를 하는데, 인형극은 박자가 중요하다. 인형이 걷는 박자를 잘 맞출 수 있는지, 인형 조작을 잘 할 수 있는지, 하고 싶은 의지는 강한지와 체력적인 면 등을 봐서 선발한다. 처음에는 최고점부터 11명을 선발했고, 이번에 추가로 2명을 더 선발해 총 13명(남 7, 여 6)이 활동하고 있다.

▶ 연습은 어떻게 진행되는가.
하루에 한 시간씩 연습이 이루어진다. 현대 인형극회에서 11년간 인형극을 하신 전문가 선생님을 모시고 처음에는 한 달에 4번 정도 교육을 받았지만 지금은 한 달에 한번 정도 오셔서 봐 주신다. 우리가 보는 것보다 선생님이 보는 것이 정확해서 감정적으로 부족한 면들을 많이 수정해 주신다.

▶ 공연으로 들어오는 수입은 어떻게 사용하는가.
전액 단원들의 임금으로 집행 되고 있다. 지금은 경기도 장애인 재활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인형극단이 지원을 받고 있지만 앞으로는 지원을 받지 않더라도 공연의 수익금으로 자립할 수 있는 극단이 되었으면 한다.

▶ 앞으로의 계획과 바람이 있다면.
지역사회 내에서도 그렇고 전국적으로도 공연을 할 수 있는 팀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단원들이 전문성을 갖춰 진정한 문화인으로 거듭나길 바란다. 우리가 일을 하면 월급에 대한 세금을 내듯이 장애인들도 세금을 낼 수 있는 위치가 되는 게 목표고 올해는 장대 인형 말고 탈 인형극에도 도전할 계획이다. 앞으로 자리를 잡으면 단원들과 함께 극단을 하나의 기업처럼 운영해보고 싶다.

박윤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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