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시각장애인 위해 목소리 기부, 행사 사회 도맡아

 

 

‘X파일’의 스컬리 목소리와 케이블채널의 오락프로 ‘남녀탐구생활’의 내레이션으로 유명한 서혜정 성우는 실은 시각장애인에게 더 인기가 많다.
20년 전부터 시각장애인을 위해 꾸준히 봉사를 해 왔고 최근엔 이런 저런 장애인 행사의 사회를 도맡다보니 대부분의 장애인들이 그를 알아보게 된 것.
약 10분 출연하는데 수 백 만원을 줘야 할 만큼 높은 ‘목소리값’을 자랑하는 그는 봉사활동으로 인해 돈보다 더한 기쁨과 행복을 얻고 있다고 말한다.
매주 2회 시각장애인협회에서 펼치는 재능기부를 돈으로 환산하면 엄청난 액수가 되는 서혜정 성우의 목소리를, 장애인과 함께 해 더 아름다운 그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그간 몇 편의 작품에 참여했으며 대표작은?
=매일 2~3편의 영화, 드라마 혹은 광고에 참여하고 있다. 이 일을 30년 동안 해왔으니 그 동안 한 작품이 수 만 편은 될 것이다. 대표작이라면 ‘114’가 아닐까? “문의하신 번호는 몇 번입니다”라는 전화안내 목소리도 내 목소리다. X파일과 남녀탐구생활은 큰 인기를 끈 작품이고 대만국립박물관, 루브르박물관, 베르사유궁전에도 한국어 작품해설에 내 목소리가 나온다. 나 스스로도 매일 내 목소리를 듣고 있다. 114에 전화를 해도 카드사에 전화를 해도 TV를 켜도 또 채널을 돌려도 내 목소리가 나온다.

-우리나라 최고의 성우가 됐다. 어떤가?


=성공의 기준은 잘 모르겠지만 어릴 때 꿈이 성우였으니 그 꿈은 이룬 것 같다. 최고의 성우가 됐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결코 끝은 아니다. 산에 오를 때도 정상에 오르면 끝이 아니라 그 때부터 다시 능선을 타지 않나. 그게 진짜라고 생각한다. 내가 얼마나 능선을 탈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루하루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 이 일을 30년간 하다보니 이제 후배들도 많아졌다. 책임감이 더 크다.

 

-장애인 봉사에 적극 나서고 있는데...
=솔직히 봉사활동이 하기 싫을 때도 많다. 꼭 봉사활동을 하는 시간에 높은 보수를 약속하며 성우일을 부탁하는 사람들이 있고 개인적인 일이 생길 때도 있다. 최근엔 오랜만에 준비한 여행을 포기했다. 여러 사람이 같이 가는 여행이었는데 화요일과 수요일, 봉사활동하는 날과 일정이 겹쳤다. 무척 아쉬웠지만 봉사를 위해 여행을 포기해야 했다. 모든 일을 제쳐두고 이 일을 하지 않으면 꾸준히 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무엇이 더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일인지 생각하면 답은 나온다.

-장애인들에게 인기가 많을 것 같다.
=한번은 어떤 장애인 행사에 가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 “3층 좀 눌러주세요”하고 부탁을 했다. 그랬더니 어떤 시각장애인 분이 “어, 서혜정 씨죠?”하는 거다. 그 뒤부터 난리가 났다. 3층에서 같이 내린 장애인 분들이 사진과 사인을 요청하는 통에 한참을 붙들려 있었다. 어떤 분은 “서혜정 씨, 우리한테는 김태희, 이영해 씨보다 서혜정 씨가 더 좋아요. 최고의 스타에요”한다. 아무래도 목소리에 민감한 시각장애인 분들이 저를 많이 기억해주시는 것 같다.

-처음 목소리 기부를 하게 된 계기는?
=성우로 처음 방송사에 입사하면 보통 선배들에 이끌려 장애인단체에서 봉사를 시작하게 된다. 처음 시작하는 이런 봉사는 성우로서 자신의 기량을 연마하는 발판이 되기도 한다. 그러다가 경력이 좀 쌓이고 방송이 많아지면 봉사활동에서 자연스럽게 멀어진다. 나 같은 경우는 멀어졌다가 다시 돌아온 경우다. 수 년 전에 봉사를 다시 시작하면서 나에게 약속을 했다. “이번엔 놓지 말자. 꾸준히 하자” 이제는 오래 하게 되니까 후배들을 이끌기도 하고 또 다른 연예인들에게 참여를 권유하게도 됐다.

-어떤 방식으로 봉사활동을 하나?
=일주일에 두 번 화요일과 수요일 오전에 시각장애인협회에 가서 녹음을 하며 봉사를 한다. 방송녹음을 하기도 하고 오디오북을 만들거나 예술작품해설 등도 한다. 오랜 기간 이 일을 하다보니 최근엔 행사 사회를 요청하는 단체가 많아졌다. 장애인 단체 행사, 배리어프리 영화제, 그림전시회 설명 등 주로 시각장애인을 위한 행사에서 사회도 보고 작품설명 등을 했다. 가끔 대본과 함께 편지를 보내서 더빙을 요청하는 단체들이 있다. 이럴 때 좀 난감하지만 그래도 성의껏 해드리고 있다. 그분들이 도와줘서 고맙다는 말씀을 진심으로 해 주실 때 나도 기쁘다. 과거에는 스튜디오에서 녹음만 하는 봉사를 했다면 이제는 현장에서 접촉하는 봉사로 발전(?)하고 있다.

-봉사활동을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시각장애인과 청각장애인 분들이 함께 행사를 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영화를 볼 때 시각장애인은 화면을 볼 수 없으니까 성우가 목소리로 영화해설을 하는데 이게 청각 장애인들에게는 방해가 안된다. 또 청각장애인은 듣지를 못하니까 자막을 넣는데 이게 시각장애인에게는 방해가 안된다. 최근 배리어프리영화제 상영을 위해 ‘도둑들’, ‘광해, 왕이된남자’ 등의 작품해설에 참여했다.
어떤 분이 우리나라의 복지는 하드웨어는 어느 정도 갖춰졌는데 소프트웨어가 텅 비어 있다는 말씀을 하시더라. 우리 같은 사람들이 하는 일이 바로 소프트웨어를 채우는 일이 아닌가 한다. 개인과 기업이 이런 활동에 더 많이 참여해야 한다.

-최근에 장애인 봉사활동으로 상을 받지 않았나.
=지난해 흰지팡이의 날에 국회의장님으로부터 사회봉사상을 받았다. 역시 기쁜만큼 어깨가 더 무거워진다. 상까지 받아놓고 봉사를 소홀히 해선 안되니까 우선순위도 바꾸게 됐다.
2년 전에 출판한 ‘속상해 하지 마세요’란 책의 초판 인세로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책을 만들어 기부했다. 2쇄부터 4쇄까지 받은 인세로는 아프리카에 우물을 팠다. 탄자니아의 어느 섬에다 이 돈을 보내면 물이 없어서 고통받는 현지인들을 위해 우물을 파준다. 내가 2개의 우물을 팠다. 더 기쁜 건 내가 아프리카에서 우물 2개를 팠다는 것이 보도된 뒤에 다른 분들이 후원을 해 주셔서 7개의 우물을 더 팠다는 것이다. 얼마나 기쁜 일인가. 한 사람의 작은 정성으로 많은 사람들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

-봉사활동 이후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나.


=장애인의 곁에서 친구처럼 지내기 전에는 인식하지 못했던 것들이 많다. 지금은 길을 가거나 건물을 이용할 때도 장애인이 생활하기에 편리하게 돼 있나를 먼저 본다. 그러다보니 장애인이 살기 좋은 세상이 비장애인들에게 더 살기 좋은 세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어쩌다 장애인 전용 화장실을 이용한 적이 있는데 공간이 넓고 손잡이 등이 있어서 사용하기가 너무 좋았다. 우리 사회의 모든 시설을 장애인이 이용하기 편리하도록 바꾸면 좋지 않겠나.
장애인이 길거리에 나오는 것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비장애인들이 장애인들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배리어프리영화제 같은 장애인영화제에 비장애인들이 함께 참석해서 보고 느끼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정말로 함께 사는 사회가 만들어지지 않겠나.

 

-봉사활동을 할 때 특별한 마음가짐이 있나.
=글쎄, 거창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 마음가짐이라면 마음가짐이다. 내가 책을 읽는데 소리 내서 읽으면 나도 읽지만 나로 인해 누군가가 듣고 또 책을 읽는 것이 된다. 기왕에 읽는 거 마이크 앞에서 소리 내서 읽자는 생각이다. 내 목소리가 필요한 분들에게 잘 전달된다면 그 뿐이다. 거창하게 봉사에 어떤 의미를 넣는 것은 좋지 않은 것 같다.

-경기복지신문 독자에게 한마디 해달라.
=12년째 시각장애인의 친구로 지낼 수 있어서 기쁘다. 장애는 조금 불편할 뿐이지 실은 비장애와 다를 바가 없다. 수 년 전 어느 날 ‘내가 정신적인 장애를 가졌구나’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런데 시각장애인을 만나 얘기를 해보니 굉장히 건강한 정신을 가졌다는 것을 알았다. ‘아, 이 분이 장애인이 아니라 내가 장애인이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신적으로 힘 들어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시기에 나는 그 분의 건강함을 보고 힘을 얻을 수 있었다.
불편하지만 자꾸 건강하게 살도록 애쓰고 노력한다면 장애와 비장애의 차이는 없는 것과 같다. 장애를 가진 것 때문에 위축되지 말고 장애를 이해하고자 하는 많은 분들과 함께 넓은 세상에 나오시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송하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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