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차 아태장애인 10년’ 주도하는 아태장애인단체 수장 피선
“컴퓨터에 장서 3만권, 새벽 2~4시까지 책 읽으며 정책 준비”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이하 장총련) 서인환 사무총장의 초등학교 시절 꿈은 ‘거지’였다. 선천성 백내장으로 태어날 때부터 앞을 보지 못한 서인환 사무총장은 제 때 밥이나 먹었으면 하는 생각에 거지를 장래희망(?)으로 선택했다.
그런 그가 지난 10월 인천에서 열린 아태장애인대회에서 아태장애인연합(AP-DPO United)의 초대 회장으로 선출됐다. 아태장애인연합은 ‘제3차 아태장애인 10년’을 보다 효과적으로 준비하고 이행하기 위한 아태지역 장애인 당사자 단체들의 연합이다.
한 집안의 천덕꾸러기로 태어나 거지가 꿈일 수 밖에 없었던 소년이 어떻게 아시아 태평양 지역 장애인 단체들을 대표하는 수장이 됐는지 들어봤다.

-아태장애인연합 초대 회장이 됐는데...
=‘제1차 아태 장애인 10년’은 중국이 주축이 된 아태지역 민간단체연합회(RNN)가, ‘제2차 아태 장애인 10년’은 일본이 주축이 된 아태장애포럼(APDF)이 주도했다.
이렇게 20년을 보내고 나자 국제 장애인계에서 ‘해봐야 변화도 없는데 제3차는 해서 뭐하냐’는 부정적 인식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장애계는 중국이나 일본보다 더 잘 할 수 있다는 믿음과 확신이 있었다. 아태 지역 나라 중에는 못사는 나라들이 많은데 이 나라들은 미국이나 일본의 복지제도를 따라갈 수가 없다. 일본의 경우 복지의 종류는 많지 않지만 한 번에 큰 금액을 지급하고 사용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종류는 많지만 장애인에게 지급하는 금액은 매우 적다. 바로 이것이 가난한 아태 지역 국가들이 우리나라의 복지 제도와 정책을 배워갈 수 있는 지점이다. 돈은 적게 들고 종류는 많아서 자기 나라에 맞는 것을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제1차와 2차가 각 나라 정부들이 주도하고 장애인 당사자들은 주는 대로 받아먹는 경향이 강했던 것도 우리가 나서서 판을 새롭게 짜보자는 생각을 가능케 했다. 회의만 하지 실천은 부족했던 지난 20년을 반성하며 하나로 뭉쳐보자는 생각이 아태장애포럼을 설립케 했고 더 강한 실천을 위해 초대 회장에 나서게 됐다.

-스스로 장애인이면서 많은 활동을 하고 있다.
=초등학교 내내 천덕꾸러기로 살다 6학년 때 선생님을 잘 만나 새로운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 통합교육에서 발생하는 차별은 실은 선생님의 역할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본다. 선생님이 유도하는 분위기에 따라 장애 학생에 대한 반 아이들의 대우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러다 중3때 고등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시험을 쳤는데 컴퓨터 용지가 보이지 않아 시험을 망치고 떨어졌다. 원통한 마음에 청와대에 탄원서를 보냈다. “나는 교과서를 달달 외울 정도로 공부를 했는데 왜 고등학교에 들어갈 수 없냐”고 편지를 보냈더니 다음 해에 나만 교장실에서 특례시험을 보게 해줬다. 선생님이 문제를 읽어주면 내가 답을 하는 형식이었다.
이 때 처음 ‘아, 이게 정치활동이구나’하고 깨달았다. 역시 울어야 한다. 억울하면 억울함을 뚫을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장애인 정보화를 일찍 공부했는데...
=1984년 대학 졸업 후 대구대의 시각장애인 교재개발 출판부에 취직했다. 그 때는 손으로 일일이 점자를 찍던 시절이다. 몇 년 뒤 학교에서 점자를 찍는 기계를 외국에서 수입해 이 기계를 사용하기 위해 처음으로 컴퓨터를 배웠다. 근데 기계가 고장 날까봐 학교 측이 보관만 하고 사용을 못하게 했다. 그래서 고장나면 내가 변상하겠다고 하고 기계를 꺼내 썼다. 이 후에 점자 프로그램과 소리나는 점자 등을 개발하고 카이스트와 공동으로 관련 연구도 했다.
그러다 1989년에 서울로 올라와 시각장애인들을 대상으로 컴퓨터 강의를 했다. 당시에는 최초였고 또 유일무이했다. 나는 시각장애인들에게 단순한 사용법이 아닌 프로그램을 가르쳤다. 프로그램을 알고 이해하면 화면이 보이지 않아도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찍부터 많은 일을 한 걸 보면 에너지가 대단한 것 같다.
=솔직히 내 일을 즐기는 것 뿐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열심히 하는 것에 대한 만족감이 크다. 가끔 남들이 꿈이 뭐냐고 물어보는데 사실은 꿈이 없다. 굳이 말하자면 내가 지금 하는 일에 만족하며 열심히 하는 것이 꿈이라면 꿈이다. 내 초등학교 때 꿈이 거지였는데 지금 그 꿈보다 많은 일을 하고 있지 않나.
지금도 새벽 2~4시까지 책을 읽는다. 컴퓨터에 책이 수 만 권 들어있다. 아마도 대학교재, 세미나 자료, 논문 등이 각각 만 권 이상씩 들어있을 것이다. 이런 자료와 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정책을 만드는 것에 보람을 느낀다.
칼럼도 자주 쓰는 편인데 주로 차를 타고 가면서 생각을 한다. 그러면 책상에 앉아 10분이면 칼럼을 다 쓸 수 있다.

-대선을 앞두고 있는데 장애인의 투표참여, 쉬운가?
=장애인의 투표에 대해 우리 사회가 너무 무관심하다. 시각장애인이 혼자 투표를 하러 갈 수 없어 6살짜리 꼬마를 데리고 가는데 성년자가 아니기 때문에 투표소에 입장을 시키지 않는다. 활동보조인은 성년이지만 동행자로 인정해 주지 않아서 못 들어간다. 선관위에서는 “직원들이 알아서 하겠다”고 하지만 홍보나 교육이 전혀 안 돼 있다. 투표소가 2층에 있어 접근도 못하는 경우가 약 10% 정도 되고 학교나 동사무소를 투표소로 이용하는데 시설이 안 된 곳이 너무 많다. 선거공보물을 제대로 볼 수가 없다는 것도 문제다. 점자형 선거공보물 제공을 후보자의 의무사항이 아닌 임의사항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일반 공보물을 점자형 공보물로 바꾸면 매수가 많이 늘어나는데 점자형 공보물도 일반 공보물과 매수를 똑같이 하도록 제한하고 있다. 공보물의 내용을 빼서 만들 수 밖에 없어 장애인들이 차별을 겪고 있는 것이다. 공정하고 평등한 선거를 보장해야 할 공직선거법이 과연 장애인들을 제대로 배려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현재 우리나라 장애인복지를 진단한다면?
=한마디로 양적인 증가가 필요하다. 질적인 증가도 당연히 중요하다. 우리의 장애인복지 서비스는 아직 개별화가 안 돼 있어 개인별 맞춤형, 생애주기별 서비스가 필요하다. 지역에 복지관이 없으면 서비스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시설 중심 서비스도 탈피해야 한다. 정부가 자기 입맛에 맞는 용역 결과를 갖다 주는 교수에게 계속 연구를 맡기는 것도 문제다. 이런 관행이 반복되는 한 우리나라의 복지는 발전할 수가 없다.
우리가 15만원 줄 때 일본은 15만엔을 준다. 10배 이상이다. 양적인 증가가 필요하다. 무료급식, 노인, 다문화 등의 복지 관련 이슈가 나타나는 것도 좋지 않다. 정부가 이런 이슈에 대응하기 위해 별도로 예산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아랫돌 빼서 윗돌 괴듯 장애인 예산을 빼서 사용하기 때문이다.
 
-최근 장애인의 사망 사건이 많았는데...
=김주영 활동가가 다섯 발자국을 나가지 못해 질식해 숨진 사건, 중증 장애인이 떨어진 호흡기를 올리지 못해 숨진 사건, 장애인 동생을 구하다 숨진 누나 사건 등 정말 안타까운 일이 많았다. 그러나 그 보다 먼저 터진 사건이 있었다. 파주에서 자폐 장애인이 맹장염에 걸려 복통을 호소하는데 그냥 하는 소린줄 알고 이틀간 방치했다가 사망한 사건이다.
이런 일련의 사건에 대해 김정록 의원이 국회 회기 중에 장관한테 질문했다. “국가가 국민의 생명을 보호해야 하는 것이 맞냐?”고 했더니 “그렇다”고 하길래 “그럼 왜 장애인은 지켜주지 못하고 자꾸 죽게 만드냐”고 따져 물은 일이 있다.
활동보조인이 없는 시간은 모든 중증 장애인에게 공포의 시간이다. 죽은 분들한테 너무 미안하다. 사실 이 분들을 지키는 것은 국가의 책임이지만 우리 같은 단체에 사회적 책임도 있다.

-경기복지신문 독자에게 한마디 해달라.
=나는 장애를 극복하라고 얘기하지 않는다. 만약 극복하지 못하면 그것은 장애인이 잘못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장애는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수용의 대상이다. 장애를 인정하고 사회에서 살아가느냐, 적응해 나갈 수 있느냐의 문제다. 아직 나이가 어린 장애인 친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장애를 가진 것을 미안해하지 말라는 거다. 부모 걱정한다고 ‘나 때문에 부담 갖지 마세요’하는 친구들이 있는데 맞지 않다. 오히려 부모에게 ‘몸이라도 튼튼해야 하니 사과 한 쪽이라도 더 달라’고 해야 한다. 더 많이 요구하고 더 큰 사람이 돼라. 어떤 장애인도 더 큰 인물이 될 수 있다.


송하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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