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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섭 - 부산광역시 기장해운대 장애인부모회 회장
“함께 뭉쳐야 장애아동 문제 해결할 수 있어”
2011년 04월 18일 (월) 경기복지신문 gwnp@naver.com

자폐 장애인 아들과 함께 부산에서 서울까지 600km 국토대장정
공무원, 지방의원 등 만나 장애아동, 발달장애인 지원법 제정 촉구

   

'발달장애인 균도와 세상걷기, 부산에서 서울까지!'
배당에 이 문구를 달고 부산에서 서울까지 600km를 걸어온 부자, 한 달 여의 긴 여행에 아버지의 몸무게는 10kg나 줄었고, 아들의 얼굴은 새까맣게 탔다.

장애아동복지지원법과 발달장애인지원법 제정을 촉구하며 지난 3월12일 부산을 출발해 서울을 향해 국토대장정을 진행했던 이진섭씨(부산 기장해운대 장애인부모회 회장)와 이균도군(이진섭 회장 자녀, 자폐장애 1급)의 이야기다.
균도 부자는 밀양(3월18일), 대구(3월22일), 구미(3월24일), 상주(3월28일), 충주(4월3일), 성남(4월9일) 등을 거쳐 총 600km의 거리를 걸었다.

장애아동복지지원법과 발달장애인지원법 제정이 이들 여정의 목표.
이미 예정보다 약 9일 일찍 서울에 도착해 쉴 법도 하지만 또 다시 서울대장정에 나섰고 지난 13일 장애아동복지지원법 제정 촉구를 위해 전국 장애부모 15만 명이 작성한 서명서를 복지부와 청와대에 전달하기도 했다.

현재 우리나라 장애 아동 수는 9만 명에 달하고 월 평균 가구 지출액도 237.9만원(2008년 기준)에 이른다. 하지만 지금까지 우리나라 장애인 정책은 성인 장애인 위주로 추진되어 왔기에 장애 아동을 주요 대상으로 하는 정책은 없었다.

균도 부자는 국토대장정을 해오면서 각 지역의 장애자녀부모들과 지자체 공무원, 의원들과의 만남을 가졌고 자폐인과 같은 발달장애인들이 가진 어려움과 사회적 지원의 절실함을 호소해 왔다.

특히 발달장애인법은 장기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하더라도 당장 국회에 상정된 장애아동복지지원법이라도 4월 임시국회에서 꼭 통과될 수 있도록 많은 관심을 가져달라고 강조해 왔다.

법이 통과된다면 의료, 보장구 및 보조공학기기, 장애아동 발달재활서비스, 장애영유아 조기개입서비스, 지역사회 전환서비스 등을 제공받을 수 있게 된다. 그러나 현재 법안은 정부 측과의 원활한 합의가 진행되지 않아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 계류 중에 있다.

"우리 부자가 걷는 게 이슈화되면서 균도를 시설에 넣어주겠다는 전화가 열통도 넘게 온다. 하지만 우리 균도를 시설에 보내기 위해 이러는 게 아니다. 그저 우리 아이들이 남들 사는 것처럼 지역사회에서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살 수 있는 사회에 있길 바랄 뿐"이라고 말하는 이진섭씨.
국회 앞 천막 농성 1일째, 국회 안에서의 여야 원내 대표와 법제사법위 위원장과의 면담을 앞둔 균도 부자 이진섭씨와 이균도군을 만날 수 있었다.

-어떻게 국토 대장정 결심하게 됐는지
=처음에는 단순히 아들과 여행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아들 균도가 올해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나도 올해 부산가톨릭대학교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했다. 균도는 사회의 첫발, 나는 사회복지사로서의 첫발을 내딛는 시점에 무언가 기념이 될 만한 것을 해보고 싶었다. 나는 그동안 가고 싶은 곳들을 마음대로 갈 수 있었지만 자폐 장애를 갖고 있는 균도는 매일 집과 학교만을 반복하며 살아왔고 누군가 옆에 없으면 밖에 나가지도 못했다. 결국 그 아이가 살아가야할 곳은 사회인데, 이 사회에서 균도 같은 아이를 알아주었으면 바람도 있었고, 나중에 내가 이 세상에 없더라고 균도가 나와의 여행을 기억해 주기를 바라며 균도에게 좀 더 큰 세상을 보여주자는 뜻으로 기획하게 됐다.
사실 균도가 장애인 특수학교를 다닐 때 만해도 장애 아동들에게 무엇이 필요한가를 잘 몰랐다. 하지만 졸업을 하고 보니 그동안 교육부 차원에서 지원되던 것들이 성인이 되면서 한 순간에 끊기게 됐다. 서로 자기 부서의 소관이 아니라며 책임을 미루는 모습을 보면서 화도 났고, 결국 교육부에서 보건복지부로 이어지는 연결고리인 장애 아동복지지원법이 있어야겠다는 필요성을 인식하게 됐다. 더불어 내 아들과 같은 발달장애인의 삶을 이해해 달라는 취지로 국토 대장정을 결심하게 되었다.

-주변의 만류도 많았을 것 같은데.
=출발하는 날까지도 ‘갈 수 있을까’하는 의문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식후 당뇨 수치가 500정도라 인슐린을 맞고 약을 복용하고 있었고 공교롭게도 출발하기 3일 전 유암종이라는 일종의 암을 선고받은 상태였다. 많은 사람들이 반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는데, 병원에 물었더니 악성은 아니고 진행되는 단계라고 하여 어차피 바로 수술을 할 수 없는 상태니까 무리하지 않는 한에서는 괜찮다는 의사의 소견을 받았다. 하지만 유암종보다도 당뇨와 혈압이었기 때문에 철저히 조심한다는 약속 하에 시작했고 저를 잘 아는 부모님들도 다시 돌아오지 않을까 하고 걱정을 많이 했다.

-숙식은 어떻게 해결 했나.
=처음에는 모든 비용을 우리 스스로 해결하려고 했는데 우리의 국토 대장정이 사회에 알려지는 분위기라 지인들이 인터넷에 사연을 올렸고 1km당 1만원씩 후원금을 받았다. 처음에는 얼마나 후원을 받을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감사하게도 떠날 때는 600만 원 이상이 모아졌다. 숙식비는 중간에 부모들에게도 지원을 많이 받아 지금은 후원금이 남아있는 상태다. 개인 후원자만도 200명이상 되지 않을까 추측한다.

-국토 대장정 중에 많은 분들을 만나 같이 걸었다고 들었다.
=처음에는 지인들이 많이 응원해줘서 같이 걷다가 중간에 각 지역의 장애인 부모회들이 결합해 걷기도 했다. 지나가다가 몸에 띠를 두른 우리를 발견하고 자신도 장애 아동을 둔 부모라며 격려해 주시는 분들도 많았다. 하지만 부모님과 함께 아이가 따라오면 많이 걷지 못해서 하루에 10km 정도만 걸었고 균도와 둘이서만 걸을 때는 서울에 도착해야하는 날짜가 있었기 때문에 빠른 속도로 걸을 수밖에 없었다. 전체 30일 일정 중에 15일은 다른 사람들과 같이 걷고 나머지는 균도와 둘이 시간당 4~5km를 빠른 속도로 걸었다.

-걸으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인도가 보장되지 않은 곳을 걷다 보니까 균도가 혹시나 행동장애를 일으켜 차도로 뛰어들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내 가방에 끈을 묶어 균도가 잡고 걷도록 했다. 그러다가 점차 인지가 되니까 끈을 안 잡아도 차도로 뛰어드는 일은 없었다.
가장 힘들게 걸어왔던 구간은 낙동강 4대강 공사하는 구간이었는데, 공사가 한창인 양산-상주구간의 황폐화된 인공산을 걸을 때 바람이 많이 불어 모래에 흙먼지를 많이 마셔 기관지도 안 좋아졌고 목도 다 쉬었다. 걸으면서 ‘4대강에 쓰이는 예산의 조금이라도 우리에게 지원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생각이 들어 더 힘들었다.
 
-원래 일정보다 빨리 도착했는데.
=원래는 4월 20일 장애인의 날에 맞춰 서울에 도착하려고 했으나 4월 12일 장애아동복지지원법이 발의가 되고 13일과 14일 법안 심사가 예정되어 있다고 해서 보건복지부에 압박을 가하기 위해 일정을 무리하게 당겨 올라왔다. 이 법과 관련해 복지부와 몇 차례 협의를 해 봤지만 결국 법안 수용이 전반적으로 곤란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가장 핵심적인 이유는 기획재정부가 아직 답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데, 결국 복지부는 기획재정부와 예산 핑계를 대며 장애 아동 인권을 짓밟고 있는 것이다.
사실 균도와 처음에 약속한 목적지가 서울이었고 서울이라는 글자를 알아보는 균도는 지금 우리가 서울에 도착했는데도 왜 계속 걷고 있는지 모르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이런 것들을 알리는 게 중요하다. 그래서 계속 걷는다.

-아들과 걷고 나니 뿌듯하셨을 것 같다.
=물론 그렇다. 비장애인들도 해내지 못한 일을 해낸 것에 대견함을 느낀다.
어제는 아버지 산소에 다녀왔는데, 아버지는 장애인 손자를 썩 마음에 들어 하지 않으셨다. 그런 아버지께 우리 아들도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드렸다. 나한테는 더할 나위 없이 고마운 아들이고 뭐든 할 수 있는 아들이다. 내 아들 균도에게 무한한 고마움을 느낀다. 아들이지만 나의 스승으로 생각할 정도다.
또한 우리를 응원하고 이해하는 사람들을 만나서 대화를 나누고 걸어가는 길 자체가 우리 아이를 밝히는 길이라 행복했다. 아들의 이야기도 많이 들어줄 수 있었고 하루에 20km를 넘게 걸어 다리가 아프다고 하면 잠깐 쉬어 주물러 주고 약도 발라주던 그런 소소한 기억들이 다 좋았다.

-그동안 자폐아를 양육하면서 어려움도 많으셨을텐데.
=사람들의 시선이 가장 견디기 어려웠다. 균도가 장애가 심해서 경멸하는 눈초리로 쳐다보는 사람도 있었고, 차라리 욕을 하면 듣고 잊으면 그만인데, 아들이 사람들과 부딪히는 경우 장애인이라고 밝히면 그럴 때 마다 뒤에서 “장애인을 뭐 하러 데리고 나왔어. 집에 두지.” 라고 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그런 말과 그런 시선이 장애 아동을 가진 부모가 겪는 가장 큰 고통이다.
그리고 장애 아동을 둔 부모들은 이혼 확률도 높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도 많다. 아이가 장애를 가진 것이 부모의 잘못인가. 이런 부분들을 재조명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경제적인 부담도 만만치 않다. 그나마 나는 젊어서 사업을 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버텼지만 균도가 세 살 때부터 열두 살 때까지 들어간 교육비만 한 달에 150~180만원, 1년이면 2000만원이고, 10년 동안 따져보니 총 2억 원이 들었다. 이 부분은 장애 아동을 둔 부모들이 가지고 있는 큰 고민이다.
장애 아동 부모 혼자서는 힘이 미약하다는 것을 알고 균도가 특수학교에 들어가던 해 2008년부터 부산장애인부모회에 들어가서 활동하고 있다. 부모들이 힘을 합쳐서 공동 목소리를 내야지만 성과가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균도와 장애아동복지법은 큰 상관이 없다. 하지만 이번 국토대장정도 장애 아동을 둔 부모의 한 사람으로서 발달장애인의 삶을 이슈화해 보고자하는 의미가 강하다.

-앞으로의 계획은.
=조금 더 큰 사고를 칠 예정이다. 앞으로도 발달 장애인들을 위한 밑거름이 되고자 노력할 것이다. 이번 일정이 마무리 되면 부산에 내려가 이번 국토대장정 여행이야기를 책으로 만들 계획이다. 그 때 후원해주신 분들의 이름과 기업을 소중히 책에 실어 아름다운 선행을 세상과 함께 나눌 것이고 이 책을 통해서 더 많은 장애 아동을 둔 부모들과 소통하고 그들에게 힘이 되어 주고 싶다.

-장애 아동을 둔 부모들에게 한 마디.
=내 아이를 위한다는 마음으로 아이를 골방에 가두고 집 안에만 두지 마라.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당당히 우리의 몫을 보장받을 권리가 있다. 그것은 혼자만의 힘으로는 미약하지만 우리가 함께 힘을 모으고 한 자리에 모여 뭉치면 해결할 수 있다.

박윤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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