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끝나지 않은 싸움

차별과 해직은 별도라는 인권위 결정 나오길 기대
“장애인들이 설립한 대학이라면 나를 받아줄까...” 

-현재 복직투쟁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청각장애를 이유로 부당해직을 당한 청강대 만화창작과 안태성 전 교수(청각장애 4급). 미술작품을 통해 장애인에 대한 차별을 알리고자 지난 3월 혜화역 갤러리에서 ‘萬쪾畵쪾展(만화전, 본지 143호 참조)’이라는 전시회를 개최해 큰 주목을 받았다. 안 교수는 행정소송을 하여 승소하였으나 학교 측이 다시 항소하여 복직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상태다. 현재 1인 시위를 하고 있는 안 교수의 최근 현황에 대해 들어보았다. <편집자>


-지난 3월에 있었던 ‘만화전’ 이후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궁금하다.
=많은 변화가 있었다. 많은 언론매체가 관심을 가져주었고, 기존의 거칠고 세련되지 못했던 장애인에 대한 시각에도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만화전’을 통해 장애인들의 문화활동에 대한 지평을 확장할 수 있었다고 자평한다. 그러나 전시회를 지원하던 장애인단체의 재정난 때문에 원래 계획했던 전국 투어 전시가 무기한 연기된 것이 아쉽다. 현재도 계속 지원 단체를 모색 중에 있다.

=많은 변화가 있었다. 많은 언론매체가 관심을 가져주었고, 기존의 거칠고 세련되지 못했던 장애인에 대한 시각에도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만화전’을 통해 장애인들의 문화활동에 대한 지평을 확장할 수 있었다고 자평한다. 그러나 전시회를 지원하던 장애인단체의 재정난 때문에 원래 계획했던 전국 투어 전시가 무기한 연기된 것이 아쉽다. 현재도 계속 지원 단체를 모색 중에 있다.


-지난 달 장애인차별 금지법이 시행되었다. 복직 투쟁에 어떤 식으로 도움이 될 것이라고 예상하는지.
=인권위는 해직사안이 행정심에서 다루어지기 때문에 각하 할 사안이라고 한다. 즉, 본인의 해직을 행정심에서 다루기 때문에 한 가지 사안으로 두개의 기관이 맡지 않는다는 것이다.


만일 국가 인권위가 차별과 해직을 별도 사안이라고 결정하고 처리한다면 이 사안은 권고결정이 나와야 한다. 권고 결정이 나올 경우 본인은 장애인차별 금지법에 따라 이전 직위인 전임 조교수로 원직복직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앞서 밝힌대로 각하결정이 나오면 앞으로 몇 년이 걸릴지 모르는 지루한 행정소송을 이어가야 하며 복직 또한 요원해진다. 


-학교 측의 권위에 도전한 ‘괘씸죄’도 이 사건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청강대의 경우처럼 한국의 개신교 사학은 기독교 정신과는 반대로 운영되는 사례가 많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5백여 명이 넘는 해직교수가 있다. 이들이 이렇게 된 원인을 살펴보면 사학비리 고발과 같이 재단 측의 권위에 도전하여 밉보였기 때문이다. 즉, 재단이 학교를 마치 자신의 사유재산으로 여기는 태도에서 비롯 된 것이다. 대학 본연의 임무를 망각하고 자신들의 막대한 이익을 산출하는 사업으로 생각하는 잘못된 설립의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행정소송 승소 이후 항소하고 있다는데 복직이 미루어질수록 생계의 어려움이 있을 것 같다.
=처가의 도움으로 근근이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아들이 중학교 3학년인데 가정형편이 어려운 것을 알고 세배 돈 10만원을 모아 엄마에게 주며 생활비로 쓰라고 하더라.아들은 내가 해직된 상황을 아직 알지 못 한다. 단지 월급이 적어 가정형편이 안 좋다는 걸로 받아들이고 있다.


우리 부부는 아들이 이를 알 경우 받을 충격은 물론, 너무 어린나이에 사회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생길 것 같아 쉬쉬 하고 있는 실정이다.작품 활동 역시 완전히 중단한 상황이다. 작품을 하려면 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사방팔방으로 돌아다니며 일이 없느냐고 묻고 다니는 신세가 되었다.  


-청강대 만화창작학과가 있기까지 많은 공헌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청강대에 임용 되었을 당시 만화과는 애니메이션과의 만화전공으로 부속되어 한 반만 있었다. 그것도 거의 자퇴나 휴학을 해서 학생 수가 열두어 명가량 될 뿐이었고 만화전공 전임교수는 내가 처음이었다. 학장은 만화전공을 독립시켜 학과로 만들자는 내 의견에 처음에는 부정적이었다.


그러나 지난 2001년도 가을에 학과를 만들자고 다시 건의를 하여 한 학기 내내 필요한 학과 구성안 등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이듬해 2002년 만화창작학과가 설립되고 내가 초대학과장이 되었다. 신입생선발 때 학교 측의 우려와는 달리 네 개 반이 모두 3:1정도의 경쟁률을 보일정도로 인기가 좋았다. 그러나 1학기가 끝날 즈음 신임교수를 채용할 때 부적격 인사들을 학교 측 마음대로 임용한 후부터 나는 근신 경고와 함께 몇 차례 기획실에 불려나가 장애인 비하, 차별발언까지 듣기 시작했다.


-부당해고에 대한 학생들의 반응은 어땠나?
=내 전공이 얼굴분석이었고 관상과 동일한 학문이어서 만화를 공부하는 학생들에게는 유익한 정보라 생각이 되었는지 많은 학생들이 관심을 가졌었다. 그러다가 내가 해직되자 수많은 학생들이 학교의 부당함에 대해 블로그에 댓글을 써 나갔다. 심지어 일반인들 까지 들어와 응원하곤 했다.


몇몇 학생들은 1인 시위 때 함께 대자보를 만들어 옆에 서 있기도 했으며, 2007년도 스승의 날엔 교문 앞에서 수십 명의 학생들이 몰려와  “길거리 사은회”가 열리기도 했다. 지금도 여전히 많은 졸업생들이 블로그를 통해 직간접적으로 응원한다.


-이 문제는 장애인뿐만 아니라 미술인의 문제이기도 한 것 같다. 예술계 혹은 미술계의 반응은 어떤지 궁금하다.
=한국의 미술계는 예나 지금이나 변화가 없다. 특히, 미술대학의 교수들이나 기득권자들은 ‘행동하는 지성’에 대하여 터부시 한다. 그들의 주장은 “그림으로 보여 주어야 한다”는 것 이다. 더 이상 미술계에 대하여 말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문화 예술계는 ‘패거리 화’ 되어있다.


-만화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만화에 대한 철학을 듣고 싶다.
=만화는 회화나 사진, 또는 영화 등 수많은 매체보다 더 많은 소통언어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대중에게 어렵지 않게 읽히고 팔린다. 생계유지도 되고, 잘하면 여러 매체로 운반되어 다양한 시장을 형성하는 마력을 가졌다. 유소년시절 만화를 보고, 그리며 성장해서인지 만화는 다양한 삶의 모습부터 상상 속의 비현실까지 몽땅 눈으로 보고 즐기며 배우도록 해주는 묘미가 있다.


-현재 복직투쟁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최근에 한국 농아인 협회 측을 통해 청강대 학장은 ‘나를 복직 시키지 않겠다’는 최종 입장을 밝혀 왔다. 그 이유는, 내가 해직 후 자신의 학교를 ‘장애인 차별대학’으로 낙인찍히게 했고, 적법하게 임용된 교수들을 부적격하다며 명예를 훼손하는 등 학교에 큰 누를 끼쳤기 때문이라고 한다.


설사 안 교수를 복직을 시켜 놓아도 학과 교수들과 ‘인화단결이 안 될 것이다’라는 이유로 복직을 거부하고 있다. 이런 통보를 받은 연대 단체들은 ‘안태성 교수 대책위’를 결성 하고 투쟁을 결의했다. 공상에 불과할지 모르나 장애단체들이 힘을 모아 대학을 설립 한다면 그곳에선 나를 받아줄 수 있을까 라는 헛된 상념에도 가끔 젖어보기도 한다.


정리 = 강창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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