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0만 장애인의 대표로 국회진출할 것”

서울시의회 지역구 출신 재선 의원
장애인당사자 운동 적극 전개할 터
예산 10% 절감은 공무원 월급에서 

 

-협회 차원에서 국회 진출을 위한 운동이나 후원도 있을 것 같다.
지난 4월 9일 실시된 제 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지역구와 비례대표를 통틀어 총 8명의 장애인이 당선의 기쁨을 누렸다. 특히 각 정당에 비례대표 공천을 신청한 장애인당사자들 가운데 장애인 단체장이 대다수를 차지해 누가 비례대표 신청을 했는지에 많은 관심이 쏠렸다.


이 가운데 국내에서 가장 큰 장애인 단체인 한국지체장애인협회의 박덕경 중앙회장의 총선 출마 여부가 많은 이들의 관심사였으나 박 회장은 총선에 출마하지 않았다. 6대에 이어 현재 7대 서울시의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는 박 회장을 만나 장애인 정치인으로서 성공하기까지의 과정과 앞으로의  행보에 대해 들어보았다. 인터뷰는 서울특별시의회 연구동에 위치한 박 덕경 회장의 연구실에서 이루어 졌다.   <편집자>


-지난 총선에 장애인계에서도 많은 이들이 출사표를 던졌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장애인단체를 이끄는 수장으로서 총선 출마를 기대한 이들도 적지 않은데 출마하지 않은 이유가 있는지.
=남들은 내가 욕심이 많다고 하는데 나는 순리대로 사는 사람이다. 지금 서울시의원을 하고 있는데 더 큰 자리를 위해 시의원을 사퇴하면 욕심이 많다고 욕먹는다. 또한 재선거를 하게 되면 동작구민의 세금으로 해야 하는데 그 비용도 만만치 않기에 양심이 허락하지 않아 할 수 없었다.

=남들은 내가 욕심이 많다고 하는데 나는 순리대로 사는 사람이다. 지금 서울시의원을 하고 있는데 더 큰 자리를 위해 시의원을 사퇴하면 욕심이 많다고 욕먹는다. 또한 재선거를 하게 되면 동작구민의 세금으로 해야 하는데 그 비용도 만만치 않기에 양심이 허락하지 않아 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시의원은 재선을 해서 경험이 있지만 국회는 초년생이다. 정치인으로서 계보가 없는 상태이다. 서청원 의원 쪽 계보였는데 지난 해 4월 서 의원이 박근혜를 도울 테니 시의원과 구의원 모두 따라와 줄 것을 원했다. 서 의원에게 운동권 출신으로 어떻게 수구세력을 지지할 수 있냐고 따졌고, 한나라당 의원으로서 이명박과 박근혜 둘 중 한사람을 지지해야 하기에 박근혜 보다 진보인 이명박을 지지했다. 그래서 내 계보가 없어진 것이다.


만약 총선에 출마를 하게 되면 두 달 전에 사퇴를 해야 하는데 공천도 불투명해 여러 가지 이유로 출마를 못했다. 또한 두 딸 모두 나보다 더 한 진보세력으로 이러한 딸들을 설득하지 못한다. 기회는 앞으로도 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음 총선은 출마할 것인가?
=출마한다. 정치권에서는 장애인 정치인에게 대표성을 부여하지 않는다. 지난 6대 의회에서 함께 의정활동을 한 이정선 의원은 한나라당 비례대표로 시의회에 진출했는데 이번 총선에서는 한나라당 비례대표 5번에 배정받아 국회의원이 되었다.


나와 다른 점이 있다면 나는 서울시지체장애인협회장이면서 지역구로 출마해서 당선 되었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장애인 몫으로 비례대표 배정을 받은 이정선 의원에게 장애인 분야의 민원이 가야하는데 사실 모두 나에게 왔다.


그래서 그때 장애인 운동을 하는 사람이 국회로 가야 한다고 느꼈다. 하지만 정치권에선 그렇게 생각 하지 않는다. 이번 총선에서 8명의 장애인이 국회에 진출했지만 장애인 운동을 해서 중앙정치에 입문한 것이 아니다. 계보를 잘 만나서 들어간 것이다. 그렇다보니 장애인계의 대표자로서의 성격이 없다. 


-협회 차원에서 국회 진출을 위한 운동이나 후원도 있을 것 같다.
=고 장기철 회장님이 시도하다가 실패를 했다. 지난 1996년 국회의원 선거 때 회원들을 동원시켜서 서명을 받았는데 원래 1천만 명 서명이 목표였으나 4~50만 명밖에 서명을 못 받았다. 그래서 그 서명을 들고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종필 전 총재를 찾아다니면서 비례대표로 해달라고 했다가 야단만 맞은 적이 있다.고 장기철 회장님이 우리나라 장애인 복지의 선구자라고 생각한다. 그 분이 시대를 잘못 만났다.


고 장 회장님은 장애인단체나 장애인시설의 회장이나 시설장은 모두 장애인 당사자가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회장님이 이런 주장을 하니 비장애인들이 밥그릇을 빼앗는다며 회장님을 헐뜯기도 했다. 또 정치에 진출하려고 하니 장애인을 등에 업고 정치를 하려고 한다고 비난했다. 

-장애인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린다.


-정치권 진출의 계기에 대해서 말씀해 달라.
=고 장기철 회장님께서 정치를 할 수 있도록 많이 이끌어 주셨다. 본격적인 정치권 진출은 지난 2002년 지방자치선거에서 지역구인 동작구에 출마하여 서울시의원에 당선되면서 부터이다. 당시에 시의원 선거도 힘들게 했다.


출마를 10일 정도 남겨놓았는데 후보가 없어서 출마하라는 권유가 들어왔다. 그래서 출마를 하긴 했는데 당선 확률이 30%였다. 학력도 부족하고 몸도 안 좋은데다가 한나라당이 약한 지역이니 모든 상황이 안 좋았다.떨어질게 확실하니 선거운동을 해주려는 사람도 없었다. 그래서 자원 봉사자들을 데리고 와서 선거운동을 했다.그 당시 공약이 ‘아름다운 서울, 걷고 싶은 동작구’였다. 걷고 싶다는 말은 내가 제일 처음 쓴 것이다.


당시 합동 연설회가 있었는데 상대편은 중앙대학교 총 학생회장까지 한 사람이었다. 지역적 연고가 없는 곳에 출마한 나를 두고 상대편은 공격했고 이에 나는 대화를 하는 듯이 솔직하게 유권자들에게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그 뒤로 상활이 많이 바뀌어 며칠 사이에 지지도가 많이 올라 결국 선거에서 승리를 했다.


시의원에 당선 된 뒤에는 일도 많이 했다. 40억 원을 넘게 들여 생태 다리도 두 개나 놓았다. 서울시에서는 자동차가 다니는 다리가 아니라서 예산 지원을 안 해주려고 해서 어렵게 놓았는데 지금은 사람들이 너무 좋아한다. 


-30여 년이 넘는 오랜 기간 장애인 운동을 해오셨는데 장애인 분야의 발전을 위해 펼쳐나가야 할 일들이 있다면 무엇인가.
=우선 항상 주장하는 장애인 당사자 운동을 활발히 펼쳐나가야 한다. 그동안 장애인정책은 행정가들이 탁상공론식으로 정해왔는데 그래서는 안 된다. 반드시 장애인 당사자들의 의견이 들어가야 한다. 장애인 복지 정책을 세우는데 있어 장애인 단체의 의견을 반영해 법이 만들어져야 한다.


한편으로는 장애인당사자 운동에 대한 오해가 있을 수 있다. 장애인들만 다 하려고 한다고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애인 당사자 운동을 멈춰서는 안 된다. 적어도 장애인단체의 회장과 부회장은 장애인이 해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점이 있다. 내가 장애인이니까 내가 해야 한다고 우기는 것은 안 된다. 장애인이지만 능력이 있어야 한다. 직책에 맞는 능력이 있는 사람들 중에서 회장을 맡되 가능한 장애인이 하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 장애인들은 남의 것을 빼앗으려고 하는 성향이 있는데 이는 잘 못된 것이다. 남의 것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 내 것을 빼앗기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행정력이 부족하다보니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것조차 빼앗기는 것을 볼 수 있다.


세 번째로 장애인들이 너무 안일하다.장애인들도 정정당당하게 관공서에 계획서를 들고 가서 원하는 바를 이루어 내야 한다. 법률에 의해서 이러한 요구를 해야 하는데 행정력이 없다보니 공무원한테 억지를 부리고 무력을 행사하는 경우가 있다. 이러면 안 된다. 앞으로 장애인 분야에 많은 복지 정책이 펼쳐지게 되는데 그 주인은 우리가 되어야 한다.


-이명박 정부는 예산 10% 절감을 추진하고 있다. 장애인분야에는 어떠한 영향이 미칠 것으로 보는가.
=보건복지가족부에서는 예산 10% 절감을 말하는데 실제는 그렇지 않다. 장애인고용촉진공단 이사라 노동부에 예산 심의를 하러 갔는데 예산 10%를 절감한다고 하더라. 그래서 10% 절감을 어디서 하겠냐고 물었다. 공단 직원들 인건비를 절감할 건지 사업비를 절감할 건지.


하지만 사업비를 절감하면 절감하나마다 아닌가. 이명박 정부에서 10%를 줄인다면 공무원을 줄이거나 월급을 줄여야지 사업을 줄이면 발전 하는 게 아니라고 했다. 그래서 결국 장애인 분야는 절감하지 않는 것으로 이야기 됐다. 


-장애인으로서 지역구 시의원에 재선되는 등 성공의 길을 걸어왔다.
=소아마비로 장애인이 되었는데 늦은 나이인 25세 때 객지로 나왔다. 지역 유지이던 아버지는 장애인 아들이 돌아다니는 걸 싫어하셨다. 다 먹여 살릴 테니 집에 있으라고 하셨다. 그러나 형이 결혼할 때 장애인 동생이 있는 것이 분위기상 좋지 않아 집을 나오게 된 것이다.시골에서는 객지로 갈 때 이 지역에서는 큰 인재를 잃는 것이라고 할 정도였다.


얼마 전 일이 있어 시골을 내려갔더니 동네 분들이 많이 배우지도 않은 사람이 시의원을 두 번이나 하고 정몽준이랑 텔레비전에도 나올 줄은 몰랐다고 하더라.


-장애인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린다.
=나는 장애인들에게 그늘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지난 1994년에는 밝은 마음 환한 미소 짓기 운동을 펼쳐 공모를 통해 상을 주기도 했다. 장애인들 스스로 표정을 바꾸어야 한다. 긍정적 마인드를 가지고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장애인들이 생활해 나가기에 우리 사회는 부족한 것들이 많이 있지만 이를 개선시켜 나가기 위해 스스로 뭉쳐 변화를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이러한 일들을 장애인 여러분과 함께 해 나가고 싶다.


정리=오혜진 기자
사진=김태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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